뒤 늦게 발견 된 편지들
사랑스런 소녀에게
사랑스런 소녀여!!!
고요히 밤이 깊어간다.
청량한 달빛이 창가로 쏟아져 내리고 ,
멀리 어느 산봉우리에서 애끓는 서쪽 새의 울음이 잠든 골자기에 여울져 나리면
밤을 새우는 귀뚜라미의 호소가 어쩌면 나이려니 하고 생각되어지는 밤 !
그 밤을 목마르는 아쉬움으로 뜬 눈으로 흐느끼는 밤이 있었었지?
나 그대의 이름을 부르며 되뇌는 고독한 이 밤 ,
여신의 따듯한 손길이 아쉬워지는 이 밤.
더 아상 방황하지 말자고 이글을 쓰노라!
어느 때 내 사랑스런 소녀가 이글을 볼지 알 수 없으나 이글을 끄는 순간이나마 외로움을 잊고자 필을 든 것이다.
설사 이글이 그대에게 이르지 못한다 해도 이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나의 추억이 되는 것이다.
사랑스런 소녀야!
나는 그대의 모나리자 같은 미소를 맞을 때마다 내 영혼은 모두 그대에게 흡수되는 것만 같다. 그 아름다운 미소로 말미암아 그대를 그리게 되었고 그래서 그대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사랑의 불길은 어쩔 수 없는 것 , 이 내 사랑은 젊은 베르텔의 사랑으로 밖에 풀이 할 수 없다.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베르텔을 이해한다면 사회의 무서운 눈초리를 피해가며 이글을 쓰는 나의 고통도 이해하리라 .
이글은 내가 일시적인 착각에서 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여성 중에서 그대를 선정하여 내 영혼의 벗으로 삼으려 는 것이다 .
베르델은 사랑하는 여인이 준 권총으로 자살하지 않느냐?
나 그대가 즐거운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그래서 그 사랑스런 미소를 맞으련다.
난 단순히 그대의 용모에 매혹된 것만이 아니라 그대의 주변 환경까지도 알기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것이다.
지금 이글을 쓰기까지도 나 얼마나 많은 세월을 번민으로 보냈는지?
내 사랑스런 소녀가 십분이라도 알고 있다면 최대의 영관으로 알겠다.
만약 이글이 그대에게 전해 졌다면 그동안 나는 수십 번 아니 수 백, 수 천만번 내 생각을 재판 했을 것이다.
내 사랑스런 소녀여!
그대는 내가 부는 하모니카 그리고 기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그대를 위해서 이었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지, 모르는 지????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었던 것이다.
내가 굳이 막차를 탄다는 것 자체가 그대를 만나기 위해서 이었다.
하지만 주위 환경(이웃 간의 염문을 금기시 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의식)의 눈이 무서워 애타는 마음을 한마디도 못 했으니 가령 여기 밸이 있다고 치자. 스위치를 눌러야 소리가 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 사이에도 누군가가 스위치를 눌러야 만 사랑의 벨이 울리지 않겠니???
그러나 그대와 나 아니면 그 누가 이 스위치를 눌러 준단 말이냐?
내가 진작 누르고 싶어도 전류가 흐르느냐, 않느냐가 의심스럽고 두려워서 (바보가 되기 싫어) 주저 했었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비장한 결심으로 용기를 내어 지금 벨에 힘을 주워 누르는 것이다.
오직 한번 , 그러나 소리가 날 때까지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그대 마음의 문턱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일어둔다. 문을 열고 내 지친 손을 잡아 줄때까지…….
우리의 화원에는 아무도 없다. 언제든지 안심하고 나오라 …….
사랑스런 소녀여!
이렇게 해서 우리 둘 사이에 사랑의 샘물이 넘쳐흐른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방불할 만치 불같은 프라토믹 러브(영혼적인 순결한 사랑)를 우리들이 지닌 지능으로 ,결코 그늘에서가 아닌 ,재 삼자가 정말로 그대와 나 아닌 그 누구도 모르게 속삭여 보련다. 그것이 아마도 내 평생의 소원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사랑이 얼마나 순결한 가는 이것이 증명해 줄 것이다.
오 ! 사랑스런 소녀여!
그대도 물론 이글을 받으면 당황하리라.
하기에 속히 답장을 달라 소리는 않겠다.
열 번이고 백번이고 생각의 생각을 고려해서 최후의 결단으로 대답해 다오.
이것이 결코 죄악이 아님을 재삼 말한다.
답장이 올 때까지 나는 매일 밤 뜬 눈으로 보낼 것이다.
한 가지 당부하는 것은 제발 늑대 같은 제 삼자 (당신의 언니나 형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에게 미끼로 이글이 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설혹 그대가 이글이, 내가 다소 밉다 해도 너의 옛 추억으로 , 나의 …….미루자.
그럼 이 밤 깊었으니 편히 쉬어라.
안녕!
내 사랑스런 소녀여!
1964.09.06. 그대를 기다리는 마음이
오빠께.
여기는 서운리
막상 원주를 잊으려고 갔지만
고이 잊을 길이 없군요.
왜 그럴까요?
지금 쯤 나름 공상하며 음악을 들을까?
사랑하는 오빠씨 !
몹시 외롭고 허전하군요.
그러나 이곳에도 정다운 사람들이 있겠지
내가 갈 때 까지 꼭 장미를 살려 둬요.
만일 장미가 죽으면 귀여운 당신의 화가 죽는 줄 알아주세요.
오빠씨
나 원주 가 고파요. 데리러 올래요?
고모의 병은 너무 상상외로 위험해
화의 마음에 바보 같은 마음이 들지 않게끔 도와 줘요.
사랑하는 오빠.
그럼 다음에 원주에 가는 즉시 들릴게요.
그럼 안녕
1968. 07. 21. 화
문 소위 님
안녕하세요?
보내준 편지 잘 받아 읽었어.
기수 할머님 아버지 어머님 동생들 모두 별고 없으신지???
이곳 서울에는 오ㅃ를 위시해서 언니 남원 정희나 모두 별고 없이 지내고 있어
모든 거 빌어 주는 덕분이라 생각해
기수 ! 나 오늘 신촌 마리아 한데 놀러 갔다 와 11시에 집에 왔어
언니가 기수 한데서 편지가 왔다고 주기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마리아는 26일부터 직장에 나가기로 결정되고 나는 아직 ???
기수 사람이란 어떻게 살아야 만 후회 없이 살 수 있을 까 말 좀 해 봐.
막상 어디를 간다고 하고 있지만 썩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저 어디고 멀리 가고파서 그러는 거야
기수 상당에 나오고 싶은 생각이 있다니 정말 반가운 소식이야
부대에도 신부님 계시니까 시간을 때 마다 신부님 찾아뵈옵고
신부님한데 잘 지도를 받아 그러면 신부님께서도 친절히 가르쳐 주실 거야
기수 부탁이 있어
첫째 군무에 충실할 것
둘째 서로 사랑할 것
사람에게서 사랑을 빼버리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봐
셋째 나에게 좋은 사람 소개해 줄 것 (이것은 공갈)
기수 벌써 시간이 12시 40분이야
내일을 위해서 오늘은 이만 쓰고 코코 해야지
그럼 기수도 코장해
안녕
1968.10.26. 이모가
참 학교로 면회 가면 할 수 있을 런지…….
독백
인간이란 존재!
그 가치를 생각하기ㅣ전에 ,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실을 가창하기 전에, 우리들의 생활면에서 어두운 곳이 과연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 할 수 있을 까요???
모든 생활이나 이념이 안 그렇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별로 낳을 것도 없는 면이 그런대로 적지 않게 존재 한다는 사실이고
그것을 전 혼자만이 생각 할 뿐입니다.
택시나 혹은 T. V , 만년필이 고장이 났을 때는 수리를 하면 즉시 원래의 임무를 수행해 나갑니다.
그러나 인간이 정신적으로 본질적으로 고쳐야 할 중대한 고장에 대해서는 병원도, 정비실도 없습니다.
인간의 수양문제가 따른다고도 하겠지마는 통계를 생각하여 종류의 생활환경과 지적 , 인격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는 사실 앞에서도 자기의 본능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기나 질투, 수단과 방법을 분별치 못하고
동분서주하는 것을 볼 때면 나는 혼자 조소를 금 할 수가 없습니다.
나 자신도 열외가 아니며 영장도 아닌 상 싶습니다.
맛선
샛바람만 불어도 폭발할 것 만 같은 무겁고 각박한 순간입니다.
끝없이 이어가는 하수도 굴속을 헤매듯 갑갑하고 어지러운 극도로 지친 순간입니다.
얼마만큼, 어느 곳에 서광이 이순간의 분출구가 있는지 생각조차 포기할 순간입니다.
차라리 이ㅏ대로 종말을 감수하고픈 그것 밖에 없습니다.
8번째의 맛 선을 보고 9회를 약속하고 울고 있는 아가씨의 눈길이
등 뒤에 무겁고 생활과 여정이 따가워도 그래도 맛 선만은 봐야 한다나요.
“女“
1970.03.05.
언제인가 나는 조물주를 이 세상에서 제일 저주해야 한다고 말 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 생활주변에서 빚어지는 모든 희비쌍곡선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女” 라는 존재가 너무도 원망스럽기 때문입니다. 아들과 딸에서부터 부모님의 기대와 실망이 엇갈리기 시작하면 유년과 소년, 청년과 장년, 노년을 거처 종말에 이르기 까지 男과 女에 얽히고 얽히며 행복을 추구하고 생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 평범한 진리요 또한 최대의 낙이라고 하지만 너무도 많은 눈물과 죄악과 갈등을 빚어내기에 “女” 에 대해서 통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 女”를 저버리고 사는 生 또한 초라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신의 섭리를 순종하고 삶의 정화를 위해서는 南과 女가 지닌 본능을 초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엔조이의 비극, 비극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보다 지성과 도리를 준수하기 위해 인간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삶“
인간이면 누구나 빈손으로 태어났다 빈손으로 떠나갑니다.
출발과 종말이 그러한 가운데 인간은 육체적인 본능을 해결하기 위해 죽는 그날까지 희로애락의 울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조물주에게 참으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자는 인간을 창조한 사실만으로도 조물주를 미워하고 있습니다만
만일 우리 인간이 이러한 역경 속에 본능이란 것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과연 그 속에서 빚어지는 생활의 양상은 참으로 한심스러울 것입니다.
본능! 그것만이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본능에 대한 지나친 편견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면서도 인간으로서 삶의 영역을 파기해 버리는 사삼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태어났나를 묻기 전에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되게 사는가. 그 사는 방법론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해 허덕이는 세파에 정신적인 양식이야 귀 밖의 이야기겠지만 모두가 노력할 때,
생활화 할 때 좀 더 밝은 세상을, 밝게 활보할 수 있는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 숙부님께 올리는 글
신록의 계절 5월입니다.
지금 산야에는 아가시아 꽃이 만발하여 그 향기가 충천하고 있습니다.
대지는 한겨울 지루했던 동면에서 깨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춘 삼월의 따스운 햇볕을 받아 곱게 단장을 하고 이제 나들이를 나와 천주님이 베푸신 사랑의 제단을 행해 힘차게 줄달음쳐 나가고 있는 이 약동하는 순간에 당숙은 조용히 이승을 작별하시고 천주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승화하여 가셨습니다.
당숙께서 다사다난 했던 짧다고 짧고 너무도 지루했고 험난했던 길이라 길다(당년 63세)면 또한 무정토록 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숙님의 영전 앞에 당신의 영생에 복되심을 기원하옵고 또한 천주임의 각별한 사랑을 베푸시옵 도록 비는 마음에서 이글을 드리는 바입니다.
1970.5.13. 오후
저는 이것 밖에 모릅니다. 하지만 5월 13일은 당신이 당신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천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승을 떠나시던 날이라고 생각하오며 지금쯤은 저희들을 굽어보시며 “나” 잘 있노라 “내가 이렇게 잘 왔는데 왜들 그리 슬퍼하느냐“고 우리들 머리위에서 말씀하시리라 믿사옵니다.
사람이 천주님께 죄를 짓고 이 세상에 태어나 갖은 고난으로 전생의 죄를 씻고 천주님께 영속하는 날이 온다는 사실 또한 귀속하는 그 순간까지도 서로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 왔고 갈증과 시기와 질투와 번민, 고통, 이 모든 것이 천주님이 베푸신 행복을 영유하기 위한 전주곡임을 자각한다는 사실은 극히 생각키 힘든 일입니다.
그저 목적의식이 없이 태어났다가 언제인가는 죽을 몸 !
살아있는 동안이나 배불리 호의호식하기 위해서 돈과 명예를 갈구하며 호화롭게 살자고 아귀다툼을 하게 되는데 굳이 이를 회피할 필요도 없이 차라리 감수하는 것이 오히려 짧은 인생을 통하여 슬프고 고통스런 불행한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라 생각하오며 당숙은 천주님의 뜻대로 이렇게 사셨다고 생각하옵니다.
지금 저희들은 당신이 세상을 떠나시던 그날까지 1남 4녀의 아버지로서 자녀들을 키우기에 갖은 고난을 다 겪으시고 늘그막에 와서 까지도 자식들이 지어 주는 따스운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드시고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다는 사실과 그렇게도 숙원 하셨고 태양같이 믿었으며 당신보다 더 이끼고 보살폈던 아들이자 막내 ,외동이 당신의 뜻과 같이 훌륭히 자라서 국가와 민족, 가정과 당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장한 모습도 못 보시고 평범한 남들과 같이 친손자의 재롱도 보지 못했다는 시실로 해서 더더욱 슬퍼하고 있습니다만 당신이 가신 오늘의 슬픔이야 무엇에다 비할 수 있겠사옵니까만 굳이 서러워한들 또한 무엇 하겠습니까?
이미 전생에서 오늘 일을 천주님과 약속하고 태여 나셨고 저희 또한 우리들 생에서 이와 같은 운명으로 한정지어진 것이 사실이고 보면 이제 저희에게 남은 일은 당신을 슬기롭게 배웅하는 것과 나아가서 당신이 이승에서 걸었던 비운의 길을 다시는 걷지 않으시라. 믿사옵고 기도드립니다.
존경 하옵던 당숙님!
저희들의 통곡소리가 들리시옵니까?
너무도 원망스럽게 갑자기 서거(초파일 절에 갔다 오셔서 심장마비로)하신 사실로 해서 서로의 통한을 억제할 길이 없어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다시 돌아오신다면 100년이건 천년이건 울겠사옵니다.
자비스러웠던 당숙님!
저희들에게 잘 지내시다면 어떻게 잘 지내시는지 한 말씀만 하옵소서.
대궐 같이 코고 아름다운 꽃집에서 먼저 가신 증조, 고조부님을 위시해서 조상님들과 같이 사랑이 깃들고 행복한 웃음 환영받으며 잘 지내시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그래야만 저희들이 울음을 그칠 수 있겠습니다.
에? 어!
정말이니 울지 말고 너희들이나 참되게 살다가 오라고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당신의 뜻과 같이 참되게 또한 당신이 염원하신대로 모두 건강히 자라서 국가와 민족, 그리고 가정을 위해서 당신께 가는 날 까지 열심히 일하며 살겠습니다.
저희들에게 힘을 주시 옵고 서광을 비춰주시옵소서
당신의 어지시고 자비스러웠던 사랑을 기리며 평안히 잠드시옵길 우리 모두 두 손 모아 비 옵니다.
영면하옵소서!
1970년 5월 16일(음력 4월 12일) 불효 기수 올림.
사랑하고픈 기수씨 !!!
무사히 안착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뵙고서 인사드려야 하겠지만
예의를 벗어나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몹시 피로하시겠군요.
모쪼록 편히 쉬기길 바랍니다.
일찍이 말씀 드렸든 바와 같이
오늘은 제 모친의 생신일로서
구경을 나가셨기에 혼자입니다.
때문에 못가 뵙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신 두통의 사연 잘 읽었습니다.
아직도 제게 모든 신경을 쏟고 계심이 무엇보담도 기쁘옵니다.
가까운 시간에 뵈올 기회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럼 오늘밤 고운 꿈꾸세요.
안녕을 …….
1970.5.16.21:00 멀면서도 가까운 곳의 화가 드립니다.
읽으세요! 이양
단양에서 출발한지 한 시간이 지나 제천에 도착했습니다.
몸이 다소 피곤해 차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었기 때문에 제천까지 오는 동안은 아무런 감정이 없이, 차가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힘찬 대지의 함성도 듣지 않고 실려 왔으나 제천에 도착 하면서 잠이 깨었고 그간에 있었던 대화들이 머릿속에 되새겨 지고 원주를 향해 달려가는 열차의 기적소리는 못내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으며 또한 나 혼자만의 이 감정을 나 혼자로서 한정 짓기 가 아까워 영원히 남을 사연으로 지면에 남기고자 펜을 집었습니다.
지금 정차하고 있는 역은 구학 ! 역주변의 울창한 산림과 포근히 안기는 듯한 가로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 부근에는 제가 지난 가을에 친구들과 소풍을 나온 곳이라 그렇게 생소한 지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곳의 경치라면 맑은 물이 고인 곳이 있고 주위에 바위 절벽과 나무가 많아 하루의 피서로서 적합한 곳이지요.
차도 흔들리고 굴을 빠질 때 마다 연필이 멎으니 제대로 감상을 연결할 수 가 없구려.
지금 저의 기분을 무엇이라고 어떤 상태라고 정말 펜으로 서는 표현 할 수가 없구려.
잘 알고 계시는 옛날이야기 “ 춘향전”에서 춘향이와 이 도령이 서로 알게 되고 사랑이 무르익었을 무렵 갑자기 서울 아니 한양으로 떠날 때의 서러운 이별 물론 우리야 그와 같은 극한의 순간이 아니라고 하지만 떠나기 아쉬운 정과 후일을 기다리면서도 보내기 아쉬운 정은 참아 말로 표현할 수 없기는 매일 반이라 생각합니다.
그 아쉬워하는 마음을 제가 이양의 얼굴에서 읽었기에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나의 감정은 상당히 많은 충격을 느꼈습니다.
춘향과 이 도령의 이별이 아쉬웠을 때 우리는 그들을 동정하고 그러지 않기를 빌었던 그 마음을 제가 오늘 직접 피부로 느꼈다는 사실은 이미 저의 일생을 통해 획기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악수를 할 수 없는 심정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라는 말을 가슴에 묻고 떠나올 때 다시 뒤 돌아보았으나 다른 분들은 다 보였어도 이양만은 보이지 않더군요.
제 생각으로는 수줍음과 아쉬움이 엇갈려 아마도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나. 생각되어집니다.
지금까지 비록 정은 들지 않았으나 그래도 많은 아가씨들을 대해 보았으나 이양처럼 그렇게 소박하고 순박하신 모습은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떠나올 때 다음을 약속하며 미소로 아니면 악수나 손수건을 흔드는 모습을 영상에서 여러 차례 보았지만 (그것이 다소 아쉽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한국여성의 참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신 이양이 오히려 현대물을 마시고 깨었다고 자부하는 뭇 여성들 보다 수천 배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지금 열차는 신림을 멎었다가 출발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집에서는 마을의 아주머니들이 모여 떠난 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되어 집니다만 저로 해서 며칠 못 쉬었으니 푹 쉬셔야죠.
“정든 임이 오셨는데 인사도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하는 우리민요의 가사가 있습니다.
현대 파 사람들은 간혹 이 가사를 가지고 한국여성의 소극성에 대해서 비난이 심하지만 저는 적어도 일생을 반려할 사람이 라면 동양미를 다복이 간직한 이일화가 그 여인이 비록 몸이야 어찌되었건 그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 아름다움의 소유자라야 적합하리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개방적인 여성, 미니스커트에 흔히 우리 주변에서 일컫고 있는 멋쟁이 아가씨들도 저 나름대로의 인생이야 꾸며 가겠지만 은 그러나 그런 여성에겐 즉흥적인 미는 있을지는 모르나 영구성은 상실되기가 쉽죠.
끼지 않던 반지의 촉감이 가슴속까지 전해 옴을 느끼며 이양의 위와 같은 모습을 더듬고 있습니다.
반지가 제 사랑의 손가락에 갑작이 끼여 손가락이 놀랬나 봅니다.
그래서 시선은 자주 손가락에 가게 되고 그럴 때 마다 희망에 찬 즐거운 미소와 먼 후일의 꿈이 담긴 미소가 차장에 어립니다.
지금 열차는 10리 굴이라는 곳을 달리고 있어요.
평상시 여행에서는 굴이라면 질력이 났었지만 오늘은 그렇지가 않구려.
그것은 아마도 이양이 집요하게 저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시 이양의 손에서의 촉감도 무엇을 잃었는가. 쉽게 허전함이 있겠지요.
그럴 때 마다 내 반지가 어디로 갔나 생각하게 되고 따라서 제 손에 있을 반지의, 제 모습을 생각하시겠죠.
갑자기 변화된 촉감에서 오는 공허감! 잃어버린 듯 한 허탈감.
그것은 어쩌면 저에 대한 그리움으로 승화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니 꼭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잘못이 있으리라 생각되어 집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그 공허는 우리 사이에 정숙한 사랑으로서 채워지라 믿습니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으세요?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서로가 노력해야 합니다.
기차는 따리 굴을 나와 한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치악 다리를 지났습니다.
이제 원주까지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서로를 위하고 가정을 위해서 또한 우리들의 부모님을 위해서 험한 생의 고비 길을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도와가며 가야 되겠지요. 그런 고난은 서로 간에 사랑이 없이는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양과 부모님들의 염려덕분에 별고 없이 원주에 도착하리라 믿습니다.
눈에 익은 산과 집이 바라다 보이는 구려…….
떠나올 때 아버님을 뵙지 못해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는데 그것이 다소 아쉽다면 아쉬울 까
이번 이양 댁의 방문은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다시 언제 단양에 가 이양을 뵙게 될는지는 저로서 지금 확정지을 수 없고 또한 금방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매주 !
아니 그곳에서 출퇴근을 해도 부족하겠지만 허나 양측의 사정!
한 달에 한 번씩이나 뵈올 수 있을지??? 그러나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미래의 일이니 두고 봐야 할 일 .
보고픔을 참다 참다 못 참으면 그날로 내려가지요. 안된다고요? 그럼 언제 . 내년에 설마 그럴 수야 !
이제 수분 내에 원주역에 당도할 것 같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이 기분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져 더욱 멀었으면 좋겠어요.
인사도 드리지 못한 아버님께 사과의 말씀을 잘 드리고 또한 할머님과 어머님 잘 보살펴 오래 오래 사시게 해야죠.
우리는 지금 아주 젊다면 젊고 많은 시간이 남았으니까요. 우리들의 몸을 돌보기에 앞서 어르신데들 모시는데 전력을 다 받혀도 모자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부모님들의 사랑은 천분에 일도 못 갚는다 하지 않아요.
다시 뵙는 그날 까지 몸조심하고 부모님 잘 모시도록 해요.
만일 다음에 내려가서 어머님 할머님 얼굴에 축나시면 그땐 이양 무조건 기압이다.
무슨 기압?
아주 힘든 기압이야
에 또 ! 그러니까 그것이 나를 업고 맴을 뱅뱅 돌릴까?
그것은 농담이고 아무쪼록 이양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
이만 두서없이 맺으려 하오.
쌍다리(철다리)를 건너가고 있소 . 이제 내릴 준비를 해야지 .
이양도 저녁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
영옥이만 맡기지 말고 펄떡 펄떡 일어나요. 그럼 이만 내내 안녕!
안녕!
1970.05.22. 17:45 열차에서 수 씀
희야 !
아가시아 향기가 조용히 사그라진
계절의 언덕에서 끝없이 줄지어진
대열 속에
오늘도
또 하나의 그리운 그림자를 찾는다.
그리도 많은 안타까움이 존재한
마음을 부둥켜
눈망울에 그윽이 어려진 언어들을 모아
하얀 백지를 마주 한다.
심장에서 붉어진 연민
손가락 끝 힘껏
힘껏 눌러
석자를 그린다.
“그리움”
까마득한 그리움으로
어데 론가 멀리 떠나간 벗
희야 !!!!!
오늘도 영원의 한 초점을
붉게 굵게 굵게 그어라.
1970.05.30. 잠 못 드는 밤에
장미 와 나비
빨간 장미가
피었다 지던 날
나비는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한마디 기약도 듣지 못한
아픈 아쉬움 속에
쏟아지는 소나기
나비는 지금
어느 가지엔가 앉아
떠나온 장미의 향기를 되새깁니다.
허나
이미 그 자리엔 국화가 피었고
허기를 못 이긴 나비는
다시 꽃을 찾아 떠나야 했습니다.
1970.6.6. 단양에서
순희에게
무한한 독백이 끝없이 너울 져 가는 푸는 창공에
소나기처럼
낙숫물 소리처럼 그렇게 애처롭게 노을 지어 갑니다.
순희!
바다 속 같이 깊고
용광로 속 같이 뜨겁고 ,
용솟음치는 그리움은
나를 행복하게 …….
허나
기다림은 어쩌면 즐거운 병
아름다운 고통이라 하지 …….
온후한 당신의 마음은 은빛으로 변하여
내 심연의 호수위에 찬란히 빛나고
희아의 향기로운 내음은
조심스레 내안을 가득 채우고
파아란 꿈을 찾아 너울치고 있소
거울속의 인형처럼
달콤히 불러 보는 당신의 이름
난!
멀리 두고 온 세월 속에
새로운 신앙을 키웁니다.
은하보다 맑고
태양보다 밝고 뜨거운 우리의 의미가
알차게 성장하고 꽃이 되어 열매를 얻고
가슴 벅찬 희열은
만물을 초월하여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순희!
밤하늘에 영농하는 별들의 밀어를 들을 때면
가슴깊이 사무치는 그리움
희! 만을 사랑하고
희아! 만을 믿을 수 있고
하소연 할 수 있는
내 마음의 하늘이기에
내 사무치는 그리움의 무지개를
소나기 나린 후
새 하늘에 수놓으렵니다.
1970. 6. 25. 오후 당신을 그리며 수가
기도
무슨 말로 표현하오리까?
지금의 이 심정을!
아무도 알 수 없는 이 가슴의 괴로움
그 누구도 풀어 줄 수 없는 이 아픔
원망인지 아니면 미움인지
아 ! 그 아무것도 아니면서 왜 이리 괴롭단 말인가?
행복 하라는 말 만마다면 끝날 이일을
왜 이렇게 단념 못하고 괴로워하는가?
사람이 사람을 알았다 헤어지는 것뿐인데
안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무엇을 더 욕심내려는 건가 ?
갖고 싶었던 인간
영원히 정복하고 싶었던 인간
그러나 잠시도 가져서는 안 될 고귀한 인간
차라리 알지나 말 것을
그러나 조용히 빌리라
그리고 기다리리라
언제인가 내 곁에 오리라고
나는 인간을 좋아 했단다.
또 영원히 좋아 할 거란다.
귀한 인간을
그러나 나에게 고귀한 인간은 너 뿐이라고 알린다.
딸기가 익던 날
너와 나눈 즐거운 대화들
지금도 머리에 생생해
미칠 듯이 그날이 그리워진다.
다시없을 그날
대화가 아쉽다.
너와 내가 즐기던 그대화가
무얼 하는가?
이렇게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데
진정 이렇게 떠나야 한단 말인가???
쓰디쓴 이별주 한 잔 없이 너는 가야 하느냐 말이다.
그
립
다
네
가
와다오
내 곁에
영원히
돌아와 다오
여기 내가 너를 기다린다.
울고 싶은 날이다.
왠지도 모르게 마음이 저려온다.
누군가에게 매달려 울고 싶다.
하지만 아무도 내 울음을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하늘마저 울고 있다.
누군가가 그리워 온다.
빗속을 울며 달리고 싶어진다.
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불러 본다.
그러나 이제는 불러도 대답 할 수 없는 사람
왜 이리 안타까워 지는 걸까?
미운 마음보다는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원망하고 싶지 않다.
또 후회도 하고 싶지 않다.
후회 할 일은 하지 않았으니까
하늘이 어둡지만 말고 천둥이라도 쳤으면 좋겠다.
자포자기 하는 걸까?
어떻게 이 마음을 표현 할 수가 없다.
잊어야 한다는 무서운 현실 앞에서 이렇게 가슴 아파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미 돌아 올 수 없는 사람
영원히 떠나간 그 사람
그러나 그 먼 후일
서로가 만날 수 있다면 웃으며 인사 할 수 있을 까?
아마도 웃음 띤 모습 보다든 반가움의 무서움에 울지도 모르겠지.
아기가 품에서 재롱을 떨고 그 사람은 아빠가 되어 싱글대고 있겠지
그때의 나는 아가 이름이 뭐냐고 묻는 게 당연 할 것이고
만일 우리들의 아가 이름과 같다면 나는 웃으며 그 사람께 감사를 드리겠지
아직 잊지 않고 우리를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나를 알았을 때의 그 정다운 미소를 주겠지
그러면 나도 마음이 가벼워 곳 미소를 짓고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가겠지
고독해 진다
란아! 귀엽게 생겼을 란아!
아빠가 그토록 보고파 하는 아빠가
이젠 영원히 엄마 같을 떠나신단다.
엄마는 슬퍼하고 있고
먼 후일 우리 란이를 만나서 당 할 괴롬을 생각하니
지금부터 두려움이 생겨
차라리 하루 빨리 우리 란이 곁으로 가고 싶어진다.
란아!
후일 나에게 네가 미움을 줄 때
이 엄마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겠니?
아빠 한분 잡지도 못하는 바보 엄마라고 네가 내게 미움을 줄때면
이 엄마는 네게 잘 못 했다고 해서 네가 용서를 줄까?
이제 다시금 아빠가 란이를 만들고
또 석이를 만들고
그러면 나도 다시 너를 불 수 있지 않겠어?
비록 내가 너와 영원히 같이 있지는 못할망정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빠와는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없지 않니?
그걸로 만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야
그리고 이다음 우리가
이 세상을 하직하고
지금 네가 있는 하늘에서 만났을 때
그때는 영원히
아빠와 우리 란이와 그리고 석이와
아주아주 헤어지지 않고 사는 거야
웃으며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즐겁게 사는 거야
란아 귀여웠을 란아
이제 아빠가 가시는 길에 행운이 같이 하시길 빌자꾸나.
그래야 착한 우리 란이지? 우리 란이는 착할 거야 그렇지? 응 란이야 ?
기다려도 오지 못 할 사람을
이렇게 외롭게
한없이 기다리는 것은
아마도 너무 못 잊는 아픔이 있는 가 봅니다.
장미를 가슴에 앉고
오늘도 그 자리에 나와
한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미 소녀가 되어 버렸나 봅니다.
음악이 신청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흐르고 있습니다.
몇 밤이 지나면
빠져나올 수 없는 새장에 갇히는
기다리는 그 사람
왔으면 좋으련만
영 영
나타나지 않으려 나 봅니다.
기다리는 그 사람
오지 못할 그 사람
오늘도
장미를 가슴에 안고
이 자리에 나와
와주기를 빌고 있습니다.
1970.10.30. 통곡으로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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