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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및 기행문

한라산 백록담

한라산 백록담



한국사람이라면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수업에 관계없이 한국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각종 매스컴을 통하여 제주도 와 그곳을 상징하는 한라산에 대한 관광소식을 수없이 대하게 되므로 자연적으로 알게 되어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한라산에 대하여 설명한다는 것이 꼭 사족을 다는 것 같아서 쑥스러운 감이 있으나 이번 산행에 동참했던 일행 중 상당수가 처음 듣는 듯한 탄성을 들었기에 간략히 기술하고자 한다.
제주도는 한반도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남해 해상에 위치하며 우리 나라에서는 제일 큰 섬이다. 동서의 길이는 73km이고 남북이 길이는 41km 로서 전체적인 모습은 타원형인데 복판에 한라산이 있기 때문에 타원형 추의 모습과 같다.
한라산은 해발 1,950미터의 높이로 한국에서는 백두산 다음이요 남한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다.
북위 33도 라는 지리적인 위치와 근해에 난류가 흐르는 관계로 우리 나라에서는 제일 따듯하고 유일하게 열대성 식물이 자생하는 지역으로 사계절 내내 꽃이피기 때문에 같은 나라이면서도 이국적인 정취가 물신 풍기는 곳이다.
제주도하면 삼다(三多)와 삼무(三無)를 거론하는데. 삼다는 여자, 바람, 돌이 많다는 것이고 삼무는 도둑과 대문과 거지가 없다는 것인데 이는 옛날이야기 이지만 바람과 돌은 지리적인 여건이고 여자는 남자들이 고기잡이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익사하는 사례가 많다보니 자연적으로 여자숫자가 늘었을 것 같고 혼자 살게된 여자는 어쩔 수없이 바닷가에 나가 해녀가 되어 생계를 연명해야
할 것이며 사람숫자가 많지 않으니 그리고 농사를 짓던 고기를 잡던 생계수단 이 쉽게 보장되니 굳이 남의 집에 들어가 구걸하거나 도둑질 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이러다 보니 대문도 필요 없지 않겠는가?!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살기 좋은 곳임에는 틀림이 없는 곳이다.
다만 옛날에는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배 이외는 다른 교통 수단이 없기 때문에 죄인들이 쉽게 탈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나라에서는 유배지로 더 많이 인식되었던 것이 아쉬울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적인 관광지가 되어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들고 이것이 제주를 살찌우고 나라를 살찌운다고 생각하면 나라의 보고인 셈이다. 또한 우리 나라의 신혼 부부 중 60여%는 이곳에서 첫날밤을
맞으니 제주는 추억의 도시오 그리움의 세월인데 어찌 제주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목적으로 제주를 찾지마는 대부분 한라산을 처다 만 보고 갈 뿐 백록담까지 등산하여 한눈에 제주를 나려다보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는 산에 오르는 데 부담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산을, 등산을 좋아한다
해도 시간제약이있고 해변관광이 우선 이다 보니 한라산 등산은 통상 다음으로 미루게 마련이다.
나 역시 84년에 2박 3일간 관광여행을 와서 구석구석 다 보고 갔지마는 동행이 등산을 싫어하여 나 혼자 일정을 연기하면서 까지 등산을 감행 할 수가 없어 아쉬운 채 돌아와야 했다.
한라산이, 제주도가 내륙에 붙어있거나 근해에 위치한다면 국내 관광객 대부분 이 이곳을 제일 먼저 찾을 것이지만 바다를 건너기 위해 배를 타던가 비행기를 타야하는 시간적,경제적 부담까지 있어 특별히 계획을 짜야했고 자주 찾을 수 없는 곳이 된 것이다.
한라산 등산도 역시 맥을 같이 한다.
산을 좋아하는 등산객 대부분이 매주, 아니면 가끔씩 등산을 하면서 남한에서는 제일 높은 한라산을 먼저 생각하겠지마는 이러저러한 부담으로 쉽게 결행을 못 하고 내륙에서 지리산,설악산, 덕유산. 태백산, 오대산 순으로 찾아다닌다.
건강을 위하여 운동으로 등산을 하는 것이기에 꼭 높은 산을 올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그래도 산을 오르다보면 자연 보다 높은 산을 올라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되고 또 보다 높은 산을 등산했다는 경력이 등산의 그 어떤 등급을 말해주는 듯하여 왠 만치 등산 실력이 구비되면 자연 높은 산을 한 두번쯤은 등산을 시도하게 되고 나중에는 한국 내에서 높다는 산은 다 챙기게 되어있다.
나 역시 이렇게 벼르던 한라산 등산을 우연찮게 통일 산악회와 연결되어 이번에 등산하게 된 것이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통일산악회를 안지는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이다.
지금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에 살고 있지마는 이곳에 이사오기 전에는 우리도 천호동에서 10여 년을 살았었고 그 곳에 살 때 민주산악회란 이름으로 정치인 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산악회를 조직 운영하기 때문에 아주 싸게 등산을 다닌 다는 소식은 들었지마는 정치적인 조직이라 한번도 참석하지 않고 혼자서 집 사람과 같이 또는 이웃 사람들과 등산을 다녔다.
3년 전에 분당으로 이사를 왔었고 작년에 다시 이곳 수지로 이사를 오면서 같이 등산할만한 이웃도 없이 오직 혼자서 집사람과 단둘이서 이곳 주변의 산들을 가끔씩 등산을 해왔는데 그러면서도 천호동 민주산악회의 소식은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스폰서 노릇을 하던 정치인이 지원을 중단하여 독자적으로 운영한다는 것과 그래서 이름도 통일 산악회로 바뀌고 등산회비도 인상되어 1인당 장거리를 나갈 때 20,000원씩을 각출한다나. 집사람이 그곳에 살 때 사우나를 자주 이용하였는데 자주 만나는 동년배들과 친목회를 조직하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다보니 이곳에 이사를 와서도 모임에는 계속 참석을 하다보니 친목회 회원중 일부가 통일 산악회에 가입 등산을 다니면서 등산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자랑
삼아,수다 삼아 등산소식은 자동적으로 들려왔으며 또한 우리에게 통일산악회에 들어오라는 권유까지도 여러 번 있었지만 거리도 멀고 이곳 인근에 손쉬운 등산코스가 많이 있어 장거리나 따라갈까 가까운 곳에서는 필요를 느끼지 않는 다고 가입을 유보 해 왔었다.
헌데 지난해 11월초에는 지리산 천왕봉을 등산하니 같이 가자고 하여 다녀왔다.
그런 이후 매주 목요일마다 통일 산악회 총무로부터 산행을 알리는 전화가 왔었지만 바빠서 참석을 못하기도 하였고 또 년 말 년 초에는 우리 내외가 감기 몸살로 일 개월 가까이 아프다보니 참석을 못하였는데 지난주 수요일 또다시 총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주말에 한라산 등산을 하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우리내외의 감기몸살 도 어느 만큼 치유가 된 듯 하고 한라산 등산을 늘 염원하여왔던 터라 일언지하에 동의를 하였다.
당일 회비가 입금되어야한다고 하기에 집사람의 의향을 확인 후 즉시 은행에 나가 1인당 14만원씩 28만원을 송금하였다.
혹시나 하여 한라산에 눈이 많은지, 등산이 용되는지를 제주에 살고있는 친구에게 전화를하여 확인을 하였다. 눈도 많고 등산이 허용된다고 하였다.
산악회에서 확인을 하였겠지만 현지 확인을 안하고 등산로 입구에서 입산통제라도 당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 그리고 작년 재작년에 한라산을 지키기 위하여 3년 동안 입산을 통제한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어서 한번 더 확인해 본 것이다.
더욱 확실한 것은 금요일 동아일보 신문 한 면에 다음주말인 23일부터 30일까지 한라산에서 눈꽃 축제가 개최된다는 관광안내 기사가 한라산의 설경 사진과 함께 실렸다.
그렇다면 이번 주가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주에는 등산객이 너무 많아 등산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1월말이면 일기가 따뜻하여 눈이 녹을 수도 있다.
지금은 상당히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눈이 제 모습을 유지할 수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눈같은 눈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흥분된 마음으로 등산장구를 하나하나 챙기면서 등산준비를 마치고 어제 오후 16시 30분에 김포공항에 모여 탑승수속을 마치고 18시20분에 이륙 19시20여분에 제주공항에 도착 구 제주시에 있는 서사라 여관에서 일박을 하였다.
아무리 등산을 위한 싸구리 여행이라고 하여도 여행은 여행답게 집에서보다는 잘 먹고 잘 자고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옛날 여관이라 그런지 방에 외풍이 세어 아파트에 적응된 서울사람들에게는 얼굴이 추워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다. 또한 손님이 자주 들지 않은 때문인지 침구가 눅눅하고 정결치 않아 덮으려니 불결하다는 생각에 일행 중 어떤 사람들은 아예 이불 호창을 뜯어낸 후 덮었다 한다. 식사도 그렇다. 어제 저녁 식사는 콩나물
국 이였고 아침은 된장찌개인데 맛이 말이 아니다. 파는 식사라면 1인분에 2천 원정도 될성싶다.
방 값이 얼마인지 식사대가 얼마씩 계산되었는지 따질 필요는 없지마는 방하나에 평균 4명을 집어넣었으니 1인당 5천 원 정도에다 밥 두끼 에 5천 원 합계 1만원 정도 치였을 것 같다. 산악회, 여행사, 여관에서 각각의 몫을 챙겨야 하겠지만 1인당 얼마씩의 수익을 계산하는지 알 수 없으나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면 기분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다섯 시 반에 기상 ,세수하고 짐 챙기고 여섯 시에 아침 식사 ,여섯 시 반에 후론트에 나와 30여분을 기다렸다. 일곱 시에 버스가 와서 승차해도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여관을 출발한지 반시간이 채 안 되어 버스는 제1 횡단 도로 중간에 있는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성판악 휴게소까지의 고개 길을 달려오는데 도로 가에 눈이 상당량 쌓여있고 도로 옆 목장의 초지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이 조성되어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열리는 것 같다. 시베리아를, 알래스카 설원을 달려 보고싶었는데 오늘 그 소원 중 반은 풀 수 있을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산행은 성판악 휴게소에서 한라산 정상까지 9.6km로서 여덟 시간 정도
소요되고 되돌아오는 코스이기 때문에 자기의 능력까지 오르다가 되돌아오는
팀과 같이 하산해도 되고 아니면 먼저 하산하여 버스에서 기다려도 된다고
했다. 한라산 정상까지의 등산 코스는 원래 6개 코스가 있으나 거리는 제일
멀지마는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 순해 이 한 코스만 등산이 허용된다고 했다.
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아홉 시가 넘으면 입산을 금지시킨다고 했다.
아이젠을 필히 착용해야하니 없는 사람들은 휴게소에서 구입을 하라고 했다.
우리가 빠른 줄 알았는데 휴게소에 도착해 보니 이미 관광버스가 여러 대가 와
있고 등산객이 휴게소 운동장에 바글바글하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공원 관리소로 향했고 입구 앞에서 스페츠
(spats:각반)와 아이젠을 착용하였다.
집사람이 스페츠와 아이젠 착용이 잘 되지 않는다고 신경질을 부린다. 우리 일행
중 3분지 2가 여자들인데 그들은 혼자서 잘도 하건만 집사람은 제 스스로 착용
도 못하면서도 내가 해주는 것이 늦다고 화를 내니 할 말이 없다 .
나까지 화가 났지만 참았다. 오늘 같이 좋은 날 마누라 때문에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다. 뭐가 그리 급한지 모르겠다. 꼭 남보다 앞서 가려한다.
이로 해서 산행에 무리가 올 수 도 있기 때문에 서두루지 말라고 수없이 일깨
워주는데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산에서 뿐만이 아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역으로 갈 때도 지하철 역 승차
위치에 도착할 때까지는 뛰어가야 된다. 그리고 상황이 허하는 한 맨 먼저 타
려고 한다.
버스를 탈 때도 마찬가지이다. 버스정류장 까지 뛰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신경을 끊고 내 볼일을 다 보고 되는대로 일행을 따리 붙었다. 앞에서 입장료를
계산했을 것이므로 출입문을 그냥 지나갔다. 통일 산악회 리본을 배낭에 달아
매서 그런지 묻지도 않았다. 집사람은 벌써 얼마나 앞서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산악회 회원 52명중 내가 거의 뒤편에 선 것만은 확실하지마는 등산객의
모습이 거의 대동소이해서 얼굴을 보지 않고서는 확인을 할 수가 없다.

눈은 출입문부터 쌓여 있다. 어림짐작으로 5,60cm는 됨직 하다.

등산로를 따라 사람들의 발자국에 눈이 다져저 도랑처럼 파인 길이 형성되어

있었다.

길은 오직 하나 ! 로폭이 50cm 안팎이라 일렬 종대로 앞사람 엉덩이만 처다

보며 걸어야했다. 앞을 바도 앞이 안 보이고 뒤를 보아도 뒤가 안 보인다.

하늘에서 보면 알록달록한 개미떼들의 행진 같겠다. 안 보이면 더 없는 설

경이겠으나 울긋불긋한 등산 행렬 자체도 인간 세상다운 설경이 아닌가 한다.

앞사람을 추월할 수가 없으니 그냥 대열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1km정도 올라가니 해발 800m 지점이란 입 간판이 보였다. 그리고 다른 산에

비하여 등산로의 이정표가 아주 자주 거의 500m 단위로 설치되어 있어 등산

객의 마음을, 조급함을 달래주는 것 만 같았다. 지금까지 성판악에서 2km 왔

음 정상까지 7.6km 남았음을 한 눈에 알 수 있고 자주 제시하여 줌으로서

처음 등산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위로를 줄 것 같다.

길옆에는 수령 2.30여 년 정도의 활엽수가 앙상한 가지를 파아란 하늘을 향

해 뻗쳐 들고 무엇인가를 호소하는 듯 묵묵히 서있고 여기저기 그러면서도

적지 안이 많게 푸르름을 간직한 활엽수가 있다. 다른 나무들은 잎이 모두

떨어지고 없는데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인데 잎이 그대로 있을까? 쉽게 표현

한다면 동백나무같이 잎이 떨어지지 않고 겨울을 나는 모양인데 잎 모양은

길이가 12cm 정도 폭은 3cm 의 긴 타원형으로서 잘 생긴 여자의 입술 같고

멀리 보면 우주선 모양이다. 이 활엽수가 눈빛을 더욱 희게 하고 앙상한 나

무기둥은 밑의 눈밭을 더욱 깊게 해준다.

집사람을 따라가기 위하여 조금의 여유가 있는 길이면 "실례합니다"를 연

발하며 부지런히 따라 붙었다. 2km 정도를 따라 붙었더니 4.50여 명 앞에

집사람의 모습과 우리를 통일 산악회에 불러준, 내가 천호동에 살았을 때

바로 앞집에 살았고 나와 동갑이고 집사람들 끼리도 동갑이라 친하게 지

냈고 이사 후에도 가끔씩 서로간 왕래를 하는 조순기 씨 내외도 보였다.

2.5km정도 올라가니 시베리안 시다라는 침엽수 숲이 나타났다.

적설량도 1미터가 넘는것 같다.

함박눈을 뒤집어 쓴 상록수는 그림이다. 아니 조각이다.

TV 뉴스에서 , 영화 속에서 본 시베리아 설원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천국이다, 이기가 바로 천국이다. 천국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지상에

서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동쪽 하늘에서 찬란한 햇빛이 하얀 가지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선녀의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는다. 저 푸른 창공에 하늘 나

라가 있다면 분명 하늘나라는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여기서 그냥 눈사람이 되어 이들과 같이 영원토록 호흡을 같이 하고 싶다.

그러나 환상도 잠시 발길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앞사람을 따라 붙다보니

어느 듯 시베리아 시다 숲을 지나가고 말았다.

1100고지를 지나는가 싶더니 어느 듯 중간 지점인 4.8km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홉 시다. 한 시간 반을 걸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휴식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사람들이 쉴 생각을 않는 것 같았다.

선경에 다리 아픈 것도 잊어버린가 보다.

아니 쉴 장소가 없다 . 외길이다 보니 그 자리에서 쉬다 보면 뒷사람이 갈

수가 없으므로 그냥 걷는다고 했다. 그래도 쉬긴 쉬어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다리가 지친다.

정상적인 등산은 50분 걷고 10분 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마는 한시간

반이나 걸었다면 15분 정도 쉬는 것이 좋겠다. 헌데도 사람들은 계속 걸어

나갔다. 20여분을 더 걸었다

두 시간 가까이 걸은 셈이다. 이제는 나를 생각해서 무조건 쉬어야 한다.

남 따라가다가 지쳐 못 걷게되면 나만 우습게 되는 것이니 내가 알아서

쉬어야 한다.

집사람을 불러 세웠다. 카메라를 달라고 했다. 조금 넓은 길에서 좀더

넓게 눈을 다져 쉴자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옆으로 지나가는데 지장이

없도록 쉼터를 만든 후 10분간을 쉬면서 귤 한 개를 까먹고 껍데기는 주

머니에 넣었다.

오늘 여기 등산하는 사람이라면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등산 시 그 어

떤 쓰레기라도 버리지 않을 상 싶은데 과일 껍질은 썩는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여러 군데 버려진 것이 목격되었다.

하얀 눈 위에 버려진 굴 껍질 ,사과 껍질이 결코 보기 좋지 않은데도 그

것을 보고도 또 버리는 마음은 무슨 마음인지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이

제는 매스컴을 통하여 알아들을 만큼 계몽이 된 것으로 아는데 얼마를

더 교육을 시켜야 이런 몰상식한 국민윤리가 바로 잡힐 수 있을 것인지

안스러울 뿐이다.

10분간 쉬었으나 다리는 그리 가벼워진 것 같지 않다.

6km를 걸었다. 이제 3.6km 남았다. 머리를 들고 좀더 멀리 올려다보니

이번에는 주목나무 숲이 전개되었다.

해발 1300M 지점부터는 앙상한 활엽수 사이사이에 주목나무가 빈 공간을

채워 주듯 아니 중요한 위치에 포인트를 찍어 주듯 서있더니 좀더 올라가

니 아예 숲을 형성하여 별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저 아래 바다 속에는 용궁이. 이곳 한라산 정상에는 천국이 서로 시샘하듯

아름답게 치장을 한가 보다. 아까 시베리아 시다 숲에서는 녹색이 짙은

그림 이였다면 이곳 주목나무 숲은 눈이 더 많은 그래서 눈 위로 주목나무

의 잔잎이 녹색 물방울로 되어 스며 나오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보이

는 대로 샷타를 눌러 댔다. 혹시나 선녀가 미소지으며 마중 나오지 안을까

가슴이 설레어진다. 이 세상 누구라 이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겠는가?

역시 하나님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다. 선녀의 침실에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선녀의 방에 들어오면 선녀가 되어야 할 테인데 렌즈로 내다보는 얼굴은

분명 세상에 때묻고 찌들린 얼굴들이다.

신선들이 사는 마을이라 그런지 집 주변에 다이아몬드가 지천으로 반짝인다.

주목나무잎 끝에 맻혔던 좁쌀만 한 고드름이 떨어져 눈 위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천연 다이아요 물방울 다이아이다. 또한 선녀들은

다이아를 내놓고 즐기지 몸에 치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현장에서 보여 주는

듯 하다.

주목나무 눈 마을을 벗어나니 한라산 정상이 코앞에 있는 듯 한데 해발 1500m

라니 아직도 450미터를 더 올라가야 한다.

현재시각 열 시 반 아직 도 한 시간 반을 더 걸어야 한다.

헌데 다리가 아프다. 등산을 두어 달 동안 안 해서 그런지 아니면 몸살감

기를 앓다보니 기력이 빠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걷기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진달래 밭 대피소에서 집사람이 볼일을 보는 동안까지를 포함해서 충분히

쉬고 사진도 한장 더 찍을 후 산행을 다시 시작하는데 집사람도 지친 모습

이다. 한라산 자락의 해변과 푸른 전원이 아름답지만 아픈 다리를 풀어주지

는 못 하는가 보다.

그래도 감사를 드렸다. 내가 재수가 좋은 것인지 산악회장이 일자를 잘 잡은

것인지 따질 필요도 없이 이렇게 맑고 바람이 불지 않고 눈이 가득한 한라

산의 정취를 100% 만끽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축복 받은 운세이기 때문

이다.

마지막 500여 미터를 남겨 두고는 나무 계단 길이다. 그래서 아이젠을 착용

한 신발이 걷는데 더욱 불편스럽다. 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대로 걸어

오르기에 나도 그냥 걸어 올라갔다. 이제는 한계단 한 계단을 오르기가 힘에

부친다. 허벅지가 아플 정도로 한 걸음 한 걸음이 아픔의 연속이다. 전에

한번 올라왔었다면 포기하고 하산하고 싶다.

집사람은 나 보다 고통이 더 심한 것 같았다. 10계단을 못 채우고 쉬는 듯

하다. 서로 부추겨 주면서 걸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알아서 하도록 ,

또한 의타심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집사람을 추월하여 내가 앞서 올라

갔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이는 정말로 수치요 그 동안 꿈꿔오던 한라산 등산은 영

원히 물 건너가는 것이고 누구에게 내가 등산이 취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가 있겠는가?

이 많은 여자들이 다 올라가는데 남자인 내가 포기한다면 이는 사나이의 수

치다. 이제 백록담을 보겠다는 것이 아니고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기필

코 올라가야 한다.

남보다 다소 늦었지만 12시 정각에 나는 정상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백록담

을 나려다보면서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아니 이 환희를 혼자 간직하기에는 가슴이 너무 좁아서

누군가와 나누어 가지고 싶어서 전화를 열었지마는 무선 중계 써비스가 되

지 않아 전화를 걸 수가 없다. 조서방 내외는 나보다 훨씬 앞서 올라와 우

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정상에 올라온 기념

으로 사진 한 장은 찍어야 하는 데 눈에 미처 마구 찍어 제키다 보니 필름

이 동나버렸다.

조서방 내외 한데 죄를 짓는 것 같다.

이미 아는 것이지만 백록담에 물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쉽다. 물이 그득히

고여있다면 정말로 장관일 것인데 ...

백록담 테두리엔 우리들만 보인다. 역시 반대방향에서는, 다른 등산로는 등

산이 안 되는가 보다. 주변에 나무도 없다. 오직 화산석! 검은 바위 돌 만

산재한다.

땅이 처음 열린 곳이라 나무가 기생하기 송구스러워 이 자리는 피했는지도

모른다.

집사람이 도착했다. 역시 이를 악물고 죽기 살기로 올라온 모양이다. 얼굴

이 아주 창백하다.

그래도 여성본능은 남아 있어서 내 도시락을 챙겨 준다. 아내의 직분에 한

치의 건너뜀도 없다. 대단한 여자이다. 그런 면에서는 내가 장가를 잘 간

것 같다.

점심은 제주에서 도시락으로 주문을 하였기 때문에 반찬이 모두 똑 같다.

밥이 차가워서 보온병에 준비해온 온수를 부어 그냥 입에 밀어 넣었다. 그

러다 보니 반찬은 그대로 남았고 그냥 버려진다는 것이 아깝다. 서울에서

준비해온 과일 주를 꺼내 권했지만 대부분 사양하여 조금씩 나눠주고 많치

않은 량이라 나머지는 내가 다 마셨다.

조서방 내외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급히 일어서 자리

를 뜨는 바람에 우리도 뒤 따라 일어서야 했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백록

담 정취를 음미해가며 식사를. 반주를 나누었으면 싶었으나 그리 되지를 못

해 아쉽다.

조서방이 일행에게 부탁하여 두 내외가 같이 "한라산 정상" 표지 석을 배경

으로 사진을 찍은 후 이어 하산을 시작하였다. 일부 일행들이 식사중이지

마는 통일 산악회는 시간을 통제하지 않키 때문에 각자가 알아서 할뿐이다.

두 내외가 같이 출발하였지마는 집사람은 나보다 앞서 나갔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왼쪽 발이 미끄럽다고 느껴 확인하니 아이젠이 풀려 나

갔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바위 위를 이리저리 건너뛰면서 풀려 나갔

는가 보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걷다보니 속도가 자연 늦어지면서

집사람 일행과는 점점 멀리 떨어진다고 생각되었지만 개의치 않고 내 속도

대로 걸었다.

식사시간 30여분을 쉬었지만 다리는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

다리의 통증으로 주변의 경관에는 이제 관심이 없다. 오직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주차장까지 하산하는 것만이 중요 할 뿐이다. 처음에는 한 시간을

걷고 쉬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자주 쉬었다. 중간지점에 이르니

정말로 그 자리에 눌러 앉고 싶을 뿐이다. 오른쪽 허벅다리 부분이 너무

아파 발을 들 수가 없다. 남들은 모두 잘 내려가는데 아무래도 나의 체력

에 문제가 있는가 보다. 두 달 동안 등산을 안 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힘이 빠지고 다리가 아파 걸음을 거를 수 없다면 이는 분명 체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작년 말 지리산 등산 때도 이보다 더 험한 길을 더 오랜 시간을 걸었어도

이렇게 다리가 아프지는 않았었는데 두 달 사이에 내 몸이 이렇게 망가젔단

말인가?

내가 걷는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뒤 사람들에게 지장을 주는 것 같아

아예 비켜 주어 가면서 걸어야만 했다. 집사람이 이런 나를 전연 신경 쓰

지 않고 , 기다려 나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고 생각하니 조

금은 얄미운 생각도 들었지마는 나 역시 항상 이런 식으로 앞서 등산을 하던

가 하산을 하였으므로 집사람을 원망할 처지가 아니지마는 하산 시 눈길에

썰매를 타고 내려가기 위하여 비닐 포대를 준비해 왔는데 그것을 가지고 먼

저 내려 간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렇게 다리가 아플 때 썰매를 타고 내려

가면 아주 쉬울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아이들과 젊은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썰매를 타는 모습을 보니 부럽고 또 준비까지 해 와 가지고 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 한다는 것이 아쉽고 그래서 집사람이 조금은 미운 것이다.

허지만 어쩌랴! 다행히 남자들은 썰매를 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반분은

풀렸다.

이제 3km 남았다. 평상시 같으면 30분 거리라 심심풀이지마는 지금은 30분

이 천리 같고 일년 같은데 어찌 내려가야 할지 암담하다. 약간의 오르막길

에서도 오른 발을 들어 옮길 수가 없다. 이제는 10여분도 계속 걷지를 못

하고 쉬어야만 했다. 뒤따라오는 등산객 모두가 나를 앞서 간다. 패배다.

이제 늙었나 보다. 해가 바뀌어 이제 내 나이 55세인데 그리 늙지 않았다

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는 그 이상 늙었는지도 모른다. 나보다 연약한 여자들

이 지나가고 중학생 , 초등학생 , 유치원생이 지나가는데 무슨 할 말이 있

겠는가?

어릴 적 생각이 난다. 1951년 1월 4일 후퇴 때 우리는 원주에서 경상도 풍

기로 피난을 갔다. 여섯 살 나이에 모두를 기억 할 수는 없지만 그중 일부가

기억 나고 그 중에서도 단양읍 못미처 남한강 가의 임시 피난민 수용소에서

일박을 하면서 나무 가지에 솥을 달아매 놓고 내가 강가에서 주워온 마른

나무로 저녁을 지어먹던 일 ! 그리고 그 다음날 눈 덮인 죽령고개를 넘는데

처음에는 나 혼자 걸어 올랐지마는 상단으로 올라가면서 눈이 많아 내가

혼자 힘으로 걷지를 못 하자 이불 보따리를 지고 산을 넘던 할아버지 지게

위에 올라 앉게 되었고 죽령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에서 할아버지가 넘어지면

서 나 역시 눈밭에 나 딩굴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의 할아버지 연세

가 62세였음에도 짐을 지고 나까지 짊어지고 죽령고개를 넘었는가 하면 나

또한 그해 봄 풍기에서 원주까지 300여 리 길을 엄마와 둘이서 몇 일 만

인지는 모르지만 걸어서 왔을 만큼 어려서부터 걷는데는 이력이 난 그야말로

숙달된 조교인데 내가 이렇게 빨리 무너질 수가 있단 말인가?

더 있다. 옛날에는 다그랬다고 하겠지만은 중학교 3년을 매일같이 10km,

25리를 왕복하였고 고등학교 3년을 8km, 20리를 왕복하였으니 적어도 매일

같이 16km를 6년 동안 그것도 개근으로 통학을 하였다면 남에게 자랑할

만도 한 경력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과 별 차이 없이 환

갑도 안되어 이렇게 빨리 노쇠 한다고 생각 하니 화도 나고 한편으로는

허망하다.

그러나 어찌 하랴!

어찌되건 주차장까지는 가야한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도 있고 SOS를 칠 수도 있지마는 그런 상황까지는 아닌

것 같고 어쩌면 한라산이 나의 인내력을 시험하는지도 모를 일이고 적어

도 조서방 내외에게는 내가 훨씬 먼저 등산을 시작했고 더 많이 등산을 하

여 건강한 것으로 알아왔었는데 여기서 주저앉으면 조서방 내외에게 우리

내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오늘 다소 늦는 것은 컨디숀 때문이라고 변명하려면 끝까지, 주차장까지는

내 힘으로 가야한다. 산악회에도 우리가 산을 많이 타본 사람으로 소개되

어있는데 그것도 군인 출신이 중간에서 낙오를 한다는 것은 죽음만도 못하

다.

걷자 ! 걷자! 시계를 보아가며 , 발걸음을 세어가며 계속 걸었다.

올림핔에서 마라톤 경주하는 모습이 생각이 났다.

앞사람의 보폭을 뒤에서 그대로 따라 밟으면 상대를 쉽게 따라잡는다는 것

이 생각났다.

그렇게 해 보니 다리도 들 아픈 것 같고 그를 따라 가는데 부담이 없다.

이제 500미터 남았다.

그간 여러 번 발걸음을 세었지만 이제 정말로 500보만 세면 종점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보폭이 짧기 때문에 왼발만 세면된다.

그래도 조금은 제정신이 있어 눈밭에서도 잎이 변하지 않는 활엽수의 이름

을 알기 위해서 잎사귀 하나를 따서 주머니에 넣었다.

300을 세었을 때 주차장이 보였다.

오 이제 살았다!

이제 쓰러 저도 구원은 받을 수 있겠구나!

주차장에 도착하니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달려와 캔 맥주 한 깡을 준다.

처음에는 맥주 맛이 맥주 맛이 아니다.

버스에 오르는데 다리가 오르는 것이 아니고 비명이 절로 난다.

타고 보니, 배낭을 벗어 놓고 보니 분위기가 아무래도 이상하여 다시 나려

확인하니 옆 차가 우리 차다.

우리 버스에 배낭을 실어놓고 잠시 앉아 쉬고 있노라니 조서방이 버스에

올라와 막걸리 한잔 하 잔다. 휴게실에 들어가 막걸리를 나누며 하산 중

다리가 몹씨 아팠다고 이야기 하니 아이젠 때문이라고 했다. 왜 아이젠을

빨리 끌르지 않았냐고 구박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아이젠을 잃어버려 그냥 하산한 왼쪽 다리는 아프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아이젠이 없어 두어 번 넘어지다 보니 더 이상

안 넘어 지려고 체중을 오른 발에 두고 오른발로 걸었으니 오른발이 금새

지친 것인데 그것을, 아이젠을 풀 생각을 미처 못한 것이다. 등산을 아무리

많이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배타랑이면 무엇하냐? 알아야 면장이지 ......

한라산! 정말로 많은 것을 나에게 보여 주었고 가르쳐 주었다.

고맙다 한라산 !

장하다 한라산!

멋있다 한라산!




끝.

1999년 1월 17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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