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이름
서재 밖으로 장대비가 주악주악 내리고 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끔은 나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는 한 친구의 이름이 생각난다.
이두우(李頭優)
얼핏 듣거나 한문 이름을 보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평범한 이름이다.
한문의 뜻으로 생각하면 머리가 우수한 사람이 되라는 부모님의 염원이
함축되어있다고나 할까 ?
그렇다고 이친구가 머리가 보통사람이상으로 좋다는 증거는 나와 행동을 같이 했던
학창시절이나 사회생활 중 현재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어찌되건 이두우란 한글이름은 분명 맞지만 한문이름은 호적에 올리면서 바뀐 것이라 한다.
지금은 그래도 부모가 가문의 돌림자로 작명가에 의뢰하기도 하고 부부가 의논하고 가족이 의논하여 정성 들려 이름을 짓지만 대동아 전쟁 말기만 해도 대부분의 농민들은 뜨내기 생활이요 연명에 급급하여 작명에 그리 깊은 배려를 다하지 못하였다.
하여 돌쇠, 천석이, 복순. 순이 등등의 이름은 대부분 즉흥적으로 작명되었을 것만 같다.
수많은 이름들의 작명 배경에는 사연도 구구 하겠지만 이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기에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두우란 이름은 콩밭에서 비를 맞으며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사연은 대략 이러하다.
삼복더위가 극에 달한다.
예나 지금이나 농촌시골에서는 휴가 란 것이 없다.
아니 정면으로 더위와 싸워가며 하루도 쉼이 없이 농작물과 사투를 벌려야 한다.
복 때쯤이면 논에서 벼농사일로 논매기를 한다. 초벌이 아닌 재벌쯤 될 것이다.
그리고 밭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콩밭 매는 일이 가장 짜증나는 일이다.
논매는 일도 덥고 힘들지만 밭 매는 일이 내 추억으로 볼 때 더 고생스럽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콩 섶(잎)에 바람이 막혀 하루 종일 싸우나 실에 들어가 일을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친구 부모님 내외분이 콩밭 속에서 더위와 싸워가며 밭을 매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세찬 비가 내린다. 하늘을 보니 지내가는 비가 아닌 듯하다.
덥던 땀을 시켜주어 고맙기도 하지만 일이 지연되는 것 또한 아쉽기도 하다.
허나 어찌 되건 일을 계속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아 귀가를 준비하다가 친구아버지는 젊은 혈기에 기발 한 착상을 한다.
“이봐! 집에 가봐야 어른들 계시니 별 볼일이 없잖아.
여기서 아예 일 치르고 들어가자고. 하나님이 이렇게 목욕물도 내려 주시겠다. 땀도 안 나고 아주 딱 이구먼…….
뒷물까지 누워서 하고 집에 가 낮잠이나 싫건 자면 되겠네!…….
“ 하면서 다소 주춤거리는 마누라를 콩 밭골에 눕혀놓고 우중 덩더꿍 방아를 찌었겠다.
세월이 흘러 이일을 기화로 태기가 있었고 득남한 후 두 내외가 이름을 지으면서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콩밭에서 비 맞으며 만들었으니 두우라고 짓기로 하였고 콩밭에 비를 맞으며 만들었으니 녀석은 분명 튼튼하게 자라서 장골 농사꾼이 될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셨다나.
한문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콩 두자에 비우 자를 써보니 쓰기도 쉽고 부르기 쉽고 잊어버릴 염려 없고 생각 할수록 잘 지은 이름 같았다.
하여 출근 하는 면서기를 만난 차에 득남하였으니 출생 신고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아무 달 아무 일이 생일이고 이름은 콩두에 비우자 이니 출생신고 좀 부탁드려요. “
면서기 왈 “이 사람아 누가 이름에 콩 두자와 비 우자를 쓰나? 꼭 써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가?”
이에 친구 부모님은 참아 콩밭에서 비를 맞으며 만들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잠시 주춤대는 사이 면서기가 말한다.
“자네의 한문 공부가 짧아서 그런가. 본데 내가 그러면 머리 두자에 우수할 우자로 올려 줌세.
머리가 좋으면 이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 아닌가? 아들 출세하면 그때 막걸리 한 사발 받아 줄 란가 모르것네……. “
“여부가 있것씨유…….”
뭐 이리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삼복더위에 콩밭 속에서 소낙비를 맞으며 덩더꿍 방아를 찧는 모습이 애로 영화를 보는 듯 연상되어 다 늙어서도 가끔씩 빗소리를 들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두우라.......녀석 지금 이 우중에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꼬?”
<첨언: 이두우란 이름은 가명입니다. 따라서 친구 부모님이란 표현도 가상의 상황입니다.
상기가명은 오늘 12:00시에 병점에서 예비역 골프 동호회 모임 발기회가 있어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 장대비를 뚫고 운전을 하면서 모임에서 써먹을 유머를 구상해 보다가 문득 생각난 이름입니다.
콩밭에서 비를 맞으며 사랑을 나눈다는 옛 시대 젊은 남녀의 멋진 스토리를 극화하기 위한 최적의 코멘트가 아닐까 싶어 소설로 꾸며 본 이름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참 멋진, 재미있는 이름이네요........
심심하여 전국적으로 두우란 이름이 몇 명이나 있는 지 인명 전화번호 검색사이트
(www.nice.114.co,kr)에 접속하여 열람해 보니 2008년 7월 24일 현재 249명이나 된다.
전국 5대성에서는 김두우(2). 이두우(10), 박두우(9), 최두우(5) 정두우(3) 순이다.
이 숫자는 전화 번호 상에 등재된 숫자일 뿐이고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이들 중 실제로 콩밭에서 비를 맞으며 잉태하였다하여 두우라고 작명된 사람이 몇 명일지는 알 수 없어도 적어도 1920-1950년대에 태어난 60살 이상 노령 층에서는 한국인의 생활여건으로 미루어 보건데 두우란 이름 말고 실제 콩밭에서 잉태된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를지 않을 까 상상해 본다.
어휴......! 비가 너무 오누만.
어느새 비 피해가 만만치 않은데…….
이제 그만 와도 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