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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및 기행문

오늘의 행복

 

오늘의 행복

 오늘(2010년 5월 9일 일요일) 인터넷에서 접한 뉴스들

 

 

(1)어느 기러기 가족의 안타까운 죽음

지난 5월 5일.

뉴질랜드의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한국인 여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들은 집 주차장에 있던 차 안에서 발견됐는데 40대 어머니와 10대인 두 딸이었습니다.

이들은 8년 전인 지난 2002년부터 뉴질랜드에서 살았는데 딸들은 학생비자로, 어머니는 워킹 비자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딸의 아버지는 그동안 따로 한국에 살고 있었는데 가족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곧바로 뉴질랜드 현지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장례를 치르러 갔던 아버지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장례 직전 새벽 아내와 딸들이 유명을 달리했던 그 차 안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동안 기러기 가족으로 지내던 이들은 최근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등 경제적인 문제에 부닥쳤고 또 뉴질랜드 현지의 비자 요건 강화에 따른 심리적 압박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 버냉키 "고액연봉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

사우스캐롤라이나大 졸업식 연설

"좋은 직장과 고액연봉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들과 많은 시간으로 보내고 취미생활을 즐겨라." 이 말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 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대학문을 나서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버냉키 의장은 8일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의 졸업식에 참석, 연설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단지 고액연봉만을 이유로 직업을 선택하려고 유혹을 받을 경우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액연봉을 받아보면 처음에는 흥분되지만 곧 새로운 생활수준에 익숙해지고 비슷한 연봉을 받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이러한 흥분은 금방 시들고 만다."고 지적했습니다.

버냉키는 이어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은 단 6개월이 지난 후 복권당첨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조사결과도 있다"면서 고액연봉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은 가족과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취미를 즐기며 자신의 삶을 통제할 줄 안다는 점이라고 버냉키 의장은 지적하면서 "부유한 국가들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취미를 즐길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활용하면서 직장의 일에도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삶에 대한 만족수준이 높다는 보고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졸업생들에게 "때로는 행복하지 않은 것이 좋은 점도 있다"면서 "윤리적인 일을 하는 것이 행복감을 주지 않기도 하지만 길게 봤을 때 이런 윤리적인 행위가 균형 잡히고 만족스러운 삶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조언했습니다.

 

(3)천안함 어뢰 공격 확실

백령도 앞바다에서 초계중이던 천안 함은 어디서 누가 왜 쏘았는지도 모르는 어뢰에 맞아 두 동강 나면서 46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그 가족은 물론 한국 국민들을 슬프게 하였고

(4) 이락 동시 다발 테러로 80여명 사상자 발생.

중동 지역에서는 수많은 선량한 시민들이 자살폭탄 테러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해 병상에서 병고에 시달려야 하는 등.

상기 뉴스를 접하고 나는 오늘 새삼 행복이 어떤 것인가를 되새기게 합니다.

먼저 뉴질랜드로 유학 간 한 가정의 비보입니다.

8년 전에 두 딸을 데리고 엄마가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고 한국에 있는 아빠는 기러기 아빠가 되어 당신의 모든 불편을 감수해 가며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벌어 딸들의 학비를 보내 주었을 것입니다.

확실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한부로 언급하는 것은 무례이지만 오늘의 행복을 위해 나만의 상상을 언급해 봅니다.

두 딸과 엄마가 왜 자살했을 까요?

한국의 아버지가 학자금을 못 보내줘 공부를 계속할 수 없어 자살 했을 까요?

아닌 것 같아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은 송금이 안 돼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빨리 포기하고 조기에 귀국하였다면 동래에 , 친구들에게 조금 미안할 뿐 죽음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은 학자금 마련을 위해 분명 알바를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워킹비자를 발급받았다면 어머니도 일을 하며 현지 생활비를 해결하려 하였을 것 입니다.

하지만 정식 영주권을 득한 후의 알바 와 유학 비자만 가지고 하는 알바에는 분명 여러 제한으로 수입에 큰 차이가 있을 것이고 하여 점점 더 어려운 여건에 휘말리면서 돌아오지 못할 수렁에 빠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의 아빠가 사업이 잘 못되어 집까지 날리고 신용 불량자가 되면서 이들을 구할 형편이 안 되고 현지가족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귀국해야 하는데 귀국하려해도 귀국할 여비도 현지서 먹고 잘 생활비도 마련 할 수 없다보니 자살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요.

이들의 장례를 위해 뉴질랜드에 간 아빠가 장례 준비를 하다가 또 자살 했습니다.

이모든 사고가 본인의 책임이라 자책하였을 것이고 가족 잃고 집 잃고 귀국한들 갈 곳도 없는 낙담의 순간 그가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던 같습니다.

왜 이리 되었나요.

자녀의 교육을 위해 부모가 최선을 다해야 함은 당연지사이지만 해외 유학을 무리하게 선택하였고 이도 여건이 안 되면 포기하고 귀국했어야 했는데 고집으로 수렁에 빠져 불행한 결과를 자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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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시각에도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사람, 병마와 싸우는 사람. 상해를 당해 행동이 불편한 사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 애인에게 배반당한 사람. 친구에게 사기 당한 사람.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 부도를 맞아 회사를 공매 처분하는 사람. 자원전쟁에 희생된 사람. 나아가 이념전쟁에 내몰린 사람.

이들 모두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불행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인간이 너무 많아 그렇다고, 전생의 업보에 따라 죄 값을 치른 다고도 하지만 이는 변명이지 정답이 아닙니다.

지구상에 태어난 모든 동물들. 미생물들은 생존경쟁에서 이긴 자 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존경쟁에서 패한 자는 먼저 아파야 하고 분노를 곱씹어야 하고 부상을 다하게 되면 행동이 불편해 지고 나중에는 죽음까지 당하게 됩니다.

인간도 동물이면서 동물들의 이런 생태를 아무생각 없이 당연한 듯 생각합니다.

아니 인간만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는 극단적 집단 이기주의의 소산입니다.

바꿔 말하면 인간이 소나 돼지를 잡아먹는 것이 죄악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강자의 권위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기에 강한나라가 약소국을 유린하고 필요한 자원을 약탈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다시 말해 약자는 불행해도 된다는 이론이나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이렇게 확대해석하면 한이 없기에 이야기의 방향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동물이야기는 빼고 인간들은 모두가 평등하니 인간다운 방식으로 서로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상부상조하는 생활여건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동물적 근성으로 남의 인권을 짓밟는 것은 결국 법으로 금지시키고 있지만 법보다 인간교육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남의 인권을 이용하고 유린하고 사기처서는 안됨을 어려서 부터 교육하고 습성화되어 죽을 때 까지 보존 된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도 인간은 생존경쟁에서 치열한 전투를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고통과 상실과 분노의 늪으로 추락하여 허덕이게 되는데 이 과정이 결국 불행한 삶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입니다.

힘이 있는 사람, 배운 사람, 돈이 많은 사람. 권력이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생존경쟁의 늪에서 매번, 영원한 승자가 될 수는 없고 그도 언젠가는 패자가 될 것이며 아픔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인간의 삶 자체는 행복한 삶보다는 불행 삶으로 전략할 확률이 아주 높고 또 종국적으로 늙어 병들고 나면 어차피 불행한 삶으로 귀착되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의 삶이 불행의 연속이라면 행복은 결코 건널 수없는 강 건너 피안인가요?

아닙니다.

몸으로는 강을 건너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강을 건널 수 있기에 마음으로 행복을 취득 할 수가 있습니다.

 

 

 

행복이란 정신적 만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불행은 정신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데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생활에서 만족하지 못하면 결코 행복을 얻을 수가 없겠지요.

또한 행복은 자연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창조하는 것입니다 .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족해도 이에 만족하지 않으면 역시 행복한 것이라 할 수 없고

먹고 입고 사는 것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만족한다면 그자체가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만족은, 행복은 순간입니다.

따라서 순간의 행복을 부단히 취득하는 사람만이, 행복한 순간을 많이 소유한자가 진정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할 것입니다.

행복의 순간이 짧거나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이 없듯이 영원한 불행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늘 행복한 시간이 많기를 희망하며 행과 불행을 반복하며 살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 행복의 여건을 본인은 노력도 않고 남이 만들어 주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말에는 반론이 많겠지요?

돈을 벌기 위해 밤낮으로 뛰는데…….

사랑하는 사랑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건강을 지키기 위해 술 담배 끊고 다이어트 하느라 죽을 고생인데…….

등등 수많은 변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말은 이런 육체적 노력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만족하기위한 노력을 않는 다는 것입니다.

진급을 위해, 돈을 위해, 사랑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어느 만큼의 직위와 돈과 사랑을 마련하였다 해도 이런 과정에서 만족하는 순간이 없이 계속 위만 ,앞만 바라보고 달리기만 한다면 투쟁이 있을 뿐 행복의 순간은 지극히 미미 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관대작이, 재벌이 가진 직위와 돈 만큼 꼭 행복한 것이 아니고 기초생활이 힘든 회사원이나 노동자라 해도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사랑하는 가족과 알콩 달콩 생활에 만족하며 산다면 이 삶이 실질적으로 더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이 말은 동서고금의 저명한 선각자(철학가와 종교가)들이 누누이 언급 한바 있어 더 이상의 해설은 필요 없을 듯합니다.

 

약설하고

여기에서 나는 오늘 하루 행복하려면 어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온 것 같습니다.

가만히 양지쪽에 앉아 따스운 햇살을 받으며 즐거운 명상을 하는 것도 행복의 시간이 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런 사색보다는 무엇이던 즐거운 일이나 행동을 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또 말이 많아지겠네요.

먹기 살기도 바쁜데 무슨 즐거운 일?

어찌 살면서 본인이 즐거운 일만 골라 할 수가 있느냐?

즐거운 일이 없으면 불행한 것이냐?

즐거운 일 자체를 찾아 할 수도 있지만 현재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이라도 이를 긍정적으로, 자신의 일로 재미있다고 신난다고 자신의 일이나 행동에 동화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오늘의 행복은 지금 각자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지 않으면 행복이 없다는 것 아닌가요?

 

 

행복은 현재의 마음입니다.

현재의 모든 것이 행복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 자신의 건강. 가족. 집, 직장 ,예금 등등

먼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정기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을 한다. 이것을 먼저 떠올릴 수 있고 당연한 것이지만 운동을 안 한다 해도 지금 건강하니 다행이요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한다면 이것이 만족이고 행복 아닌지요?

만에 하나 현제 병상에 있는 사람은 분명 고통과 경제적 부담이 따를 것이나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함입니다.

 

행복은 내려다보고 사는데서 온다는 것입니다.

올려다보고 ,경쟁적으로 살아야 발전이 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너무 올려다보면 현실에 불만이 생기고 경쟁에서 탈락했을 때 패배의식이, 울분이 바로 불행이 됨을 유념해야 합니다.

실례로 어느 가족이 5,000만 원짜리 전세 집에 살 경우 내 집 마련을 위해 부지런히 저축을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남보다 늦다고 직장의 봉급이 적다고 불평을 한다면 이는 불행의 시초이니 현재 전세 살고 있는 자체를 월세 사는 이웃을 보며 이도 다행이라는 만족스런 마음으로 내일의 내 집을 위해 용돈 아껴 가며 즐거운 마음으로 저축하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행복은 미래를 내다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속아 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오늘을 살면서는 항상 부족하다보니 내일은 오늘 보다 좀 더 풍성한, 뭐가 좋은 일이 안겨 올 것 같은 희망을 갖게 되며 희망은 오늘의 고통을 희석시켜 줍니다.

전에 저의 선친께서 농사일을 하셨는데 일 년 내내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농작물을 사랑하고 보살피며 피 땀 흘려 일을 하셨건만 한여름 장마 비로 농작물이 쓸려나거나 가을 냉해로 수확량이 반감할 경우 허탈한 마음에 담배연기를 뿜어내시며 내년에는 괜찮겠지 하시던 모습이 연상됩니다. 선친께서는 대안이 없는 현재의 아픔을 내년의 희망으로 상쇠하려 애를 쓰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융성했던 과거는 아무리 곱씹어도 상실된 과거가 결코 돌아오지 않습니다.

과거의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또한 공허럽고 짜증나는 현실에 고통만 커질 뿐입니다.

놓친 고기가 커 보일지 모를 일이나 사기를 당하건 투자를 잘 못 하였건 10억이란 전 재산을 날린 경우 미련을 버리고 하루빨리 과거를 망각하고 미래를 기대하며 현제의 수준에 맡는 저축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함입니다.

 

 

죽은 자식 부랄 만지지 말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이는 아무리 안타깝고 슬퍼한들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 다는 의미로서 오늘의 슬픔에서 빨리 헤어나는 것이 급선무이고 나아가 내일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백해 지지 않을 까요?

젊은 부부라면 새로 수태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수태가 불가능 한 부부라면 입양을 하거나 양자를 하거나 해야 할 것이며 이런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식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다른 분야에서 대등한 사랑을 나눠주면서 행복을 찾으란 말이기도 합니다.

 

두 딸과 부인을 잃은 남편의 아픔을 어찌 남이 해량할 수 있으랴만 그도 자살의 길을 택함에 있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더더욱 안쓰럽게 합니다.

아직 이승을 포기할 나이(45세)가 아닌데…….

절망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고 했거늘 …….

이승에서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낫다는 속담도 있고 또 불행 중 다행이란 말도 있습니다.

 

이런 속담들이 바로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삶의 지표이고 방향이며 살아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고 나아가 행복인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내일을 준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바꿔 말하면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늘의 행복은 내일의 행복으로 연결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행복에 만족하고 내일의 행복을 위해 투자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내일에 불행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 있어 행복하다고 하지만 보다 넓은 내일의 행복을 위해 섬세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적 원초적 행복 외에 그러니까 먹고 입고 잠을 잘 수 있는 행복 외에 먼 미래를 향한 한 차원 더 넓고 높은 행복을 추구하려면 노후 기초생활에 필요한 금전적 비축 외에도 창작활동이나 취미활동, 자선활동을 할 수 있는 좀 더 많은 능력들을 구비해야 합니다.

돈이 필요 없는 육체적 시간적 노력만으로 인생을 즐길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창작생활이나 취미 활동은 돈과 마찬가지로 장시간에 걸쳐 연마를 해야 합니다.

연마 성과는 노력한 것에 비해 훨씬 부족 할 수도 있으나 이에 개의 치 말고 계속 투자하고 노력한다면 재벌은 안 되어도, 프로는 못되어도 노후생활은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곧 노년의 행복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비버가 말한바 같이 연봉액수 만큼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월급이나 연봉이 인상된다고 해서 가령 월급 600만원 받는 사람이 300만원 받는 사람보다 배로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며 이는 행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 입니다.

월급에 맞게 분수에 맞게 가정생활을 꾸며 가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300만원 받는 사람이 600만원 받는 사람을 보고 자신은 봉급이 적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00만원 받는 사람보다는 훨씬 행복한 서민생활을 영유할 수가 있는 수준일 뿐만 아니라 등산이던 영화감상이던 테니스든 주말이면 취미생활도 하며 가족들이 알콩 달콩 단란한 가정을 꾸밀 수 있는 수준인데도 항상 600만 원짜리 삶만 처다 본다면 자신은 항상 부족하고, 착취당하고 배척당하는 열등감과 불만이 팽배해지면서 그것이 불행으로 지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상대적 빈곤, 상대적 불행이라 합니다.

이 상대적 불행은 사실 배운 사람들일 수록 더 심하다는 것이죠.

상대 보다 내가 더 배웠고 더 잘났고 더 많이 노력했는데 상대는 나보다 더 부자고 그래서 행복한데 나는 뭐냐? 상대를 바라보면 볼수록 자신은 항상 불행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대적 불행은 결국 자신이 해결해야 할 정신적 문제입니다.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이기에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결코 해결 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는 배워서 될 상황이 아니고 종교적으로 귀착하던가. 스스로 정신을 개조하고 터득하여 자신의 현실을 만족하고 사랑하며 이를 행복으로 전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족을 달면

동창이 사장이던, 교수이던, 장군이던 이를 상관하지 말고 한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직장생활에 충실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분수에 맞게 창작활동이나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이에 만족 할 수 있어야 된다 함입니다. 정년퇴직한 연배라면 과거의 모든 부귀영화나 직급은 망각하시고 먼저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챙기고 연금이나 비축 예금으로 손자들 용돈 주어가며 기초생활과 취미활동으로 노년을 즐길 수 있다면 이에 만족해야 하고 만족하였다면 이것이 오늘의 행복인가 합니다.

 

오늘 나는 건강해서 행복하고

가족이 사랑해 줘서 행복하고

일 않고 먹고 잘 집이 있어 행복하고

막걸리 같이 마셔줄 친구 있어 행복하고

1주일에 한두 번 골프 칠 수 있음에 감사하고

1년에 한두 번 여행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춘하추동 한국 땅에서 살고 있음을 감사하고

오늘 살아있음이 곧 행복인 것입니다.

 

2010년 5월 9일 일요일 안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