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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및 기행문

돼지 왕국

 

돼지 왕국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번에 이어서 제가 부대 내에서 길었던 돼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그때가 1973년 봄이었습니다.

상부계획에 의거 부대 영내에서 임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영농과 양돈을 하도록 지시가 되어 우리중대에서는 농경지도 없고 또 일손도 부족하여 영농은 불가하고 사단급식용 두채류 공장을 운영하면서 이곳에서 발생되는 비지가 있어 돼지를 기르겠다고 보고 한 후 공병부대에서 시멘트를 얻어다가 부록을 직접 만들어서 산비탈 여유 공간에 평탄지 작업을 한 후 방 5개짜리 돈사를 짓고 양구 농협에 부탁하여 돼지 새끼 20마리를 구입 두부공장에서 나오는 비지와 중대 식당에서 나오는 잔반으로 20마리 돼지 새끼를 기르기 시작을 했습니다.

돼지 당번병으로 농촌에서 돼지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 병사 한 명을 임명하여 먹이를 주는 일과 돼지우리 청소하는 일을 시켰는데 당번의 근무상태가 적극적이지 않기에 중대장인 제가 자주 돼지우리를 순찰하였고 순찰하면서 청소가 안 되어 있으면 청소를 시키면서 돼지새끼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새끼들을 기르기 시작한지 20여일이 지나면서 수놈들은 거세를 해야 하는데 부대 수의사가 휴가를 가는 바람에 거세시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돼지를 길러보아야 우리가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또 팔아서 돈을 많이 받아 우리중대가 쓰는 것도 아니며 사단에서 체육대회 시 상품으로 하사한다는 계획으로 양돈되는 것이기에 시기를 놓친 것을 뒤늦게 거세할 필요가 없을 듯하여 그냥 기르게 되었습니다.

 

영내 순찰시 돼지들의 성장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이들의 습성이 우리 안에서는 싸움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청소를 하기 위해서 새끼를 모두 밖으로 내놓으면 그리 멀리 도망가지도 않고 우리 주변에서 땅을 두지거나 자기들끼리 장난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싸움을 하는 것인지 몰라도 수놈끼리 만나면 꼭 싸움이 시작됩니다.

청소를 마치고 나면 한 우리에 4마리씩 집어넣고 한 밥통에서 4마리가 거의 동시에 식사를 하지만 돼지가 성장하면서는 자리가 협소하여 힘이 달리는 두 놈은 나중에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청소를 하고 우리 안으로 몰아넣거나 아니면 청소를 하지 않는 날은 통상 우리 안에 같이 있어도 이들이 항상 같이 있는 것이 아니고 청소를 하고 우리 안으로 몰아넣을 때 항상 같은 놈을 자기 집 개념으로 몰아놓을 수가 없기에 매번 동료들이 바뀌는데 일단 우리 안에 들어오면 수놈끼리 얼굴을 마주 대해도 싸우지 않습니다.

이들의 싸움은 청소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서 수놈끼리 얼굴을 마주하면 전에 싸워서 형님동생(서열)이 결정되지 않은 수놈들은 서열이 결정될 때 까지 결정전을 치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싸우는 것도 아주 신사적입니다.

결코 먼저 공격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공식적인 경기 외에도 범죄적이거나 원한을 갚을 경우 등 뒤에서 몰래 기습적으로 공격을 하거나 앞에라도 상대방이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도 일방적인 선재공격을 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돼지들은 결코 그런 장면을 보지 못하였었습니다.

저의 상상으로 말한다면

야! 한판 붙자! 누가 더 센가. 결정 해야지?

아니면 야 너 항복하고 나보고 형님이라 해라!

형 같은 소리하고 있네……. 누가 형이야. 길고 짧은 것은 대 보야 알지…….

그래 좋아. 한판 붙어보자 !!!!!! 좋아 자 어서 덤벼봐!

이렇게 이야기 한 후 서로 마주보며 턱을 질겅질겅 씹습니다.

그러면 입 주변에 거품이 고이게 되는데 두 마리 다 입에 거품이 듬뿍 물리면 싸움이 시작됩니다. 귀도 물고 목도, 다리도 물고 서로 밀치고 피하고 빙빙 돌면서 격렬하게 싸움을 합니다.

이때 동료들은 남의 일처럼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돕는 일도 없고 말리는 일도 없습니다. 구경도 하지 않습니다. 남의 일처럼 방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얼마동안 싸우다가 한 녀석이 꽥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을 치기 시작합니다.

승자가 결정 된 것입니다. 승자는 몇 발자국 따라 가면서 공격을 하지만 항복하고 저항 없이 도망하는 패자를 더 이상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형님이 결정 된 놈들은 다시 만나도 싸우지 않습니다. 진 놈이 형님 안녕하시우. 하면서 통상 대항하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헌데 이들의 싸움을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말려서 집안으로 몰아넣으면 나중에 다시 만나면 다시 싸움을 하고 결국 한 놈이 항복 할 때 까지 싸우면서 서열을 결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20마리 중 반이 수놈 이였는데 4,5일 간격으로 청소를 할 때 마다 타이틀 매취는 계속적으로 벌어지는 것이고 이를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3개월 정도 지나니 서열이 모두 결정된 듯합니다.

청소를 하려고 문을 열고 돼지들이 밖으로 나와도 싸움을 하지 않더군요.

헌데 이때부터 희한 한 현상을 발견 한 것입니다.

청소를 마치면 한 울에 4마리씩 무작위로 몰아넣는데 다음날 보면 5개의 돼지우리(남향받이 일열 돈사) 중 맨 좌측(서측) 방에 수놈 중 제일 힘이 센 녀석이 혼자서 독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암놈 수놈을 구분하지 않고 4마리를 몰아넣었으니까 암놈이던 수놈이던 모두 옆방으로 중간 담을 타 넘어 옆방이 항상 만원사례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수놈은 당연히 힘이 눌려 옆방으로 피해 도망갔다고 볼 수 있겠지만 암놈들은 굳이 공격을 안 했을 것 같은데 암놈까지 옆방으로 피 했다는 것은 분명 자기들의 왕의 방이라고 피해준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는 단 한 번의 관찰이 아니라 청소하고 몰아 놓고 그 다음 날 관찰하고 이런 일이 몇 달 동안 계속된 일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황궁이요 지도자 방을 따로 지정 운영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 참 이들 돼지가 3개월 쯤 되었을까요.

농협에서 돼지 한 마리가 사단에 기증되어 우리 부대가 임시로 기르게 되었는데 우리가 기르는 돼지보다는 약 3개월 정도 먼저 태어난 정령 6개월이 넘은 나이로 다 큰 돼지로서 영업적으로는 더 이상 기르지 않는 나이로 죽는 날만 기다리는 놈인데 이놈의 태생은 수놈이었으나 거세를 한 돼지였었습니다.

하여 그런지 살이 통통히 찐 엉덩이가 꼭 암놈 엉덩이 같고 걷는 모습 자체도 암놈다웠습니다.

남의 집에 들어와서 기가 죽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어린 새끼들의 공격에 비명을 지르며 무조건 도망만 다니는 것으로 보아 근본적으로 저항의식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한마디로 대학생이 중학생에게 무저항으로 몰매를 맞는 형이지요.

싸우다가 마지막에 항복하는 그런 싸움이 아니고 비록 등치가 적은 수놈이지만 거세를 안 한 수놈은 분명 자기의 영역이란 생각을 가지고 이방인을 몰라 내고자 하는 그런 공격이고 거세당한 다 큰 수놈은 수놈이라고 하기보다 아니 암놈이라도 공격을 받으면 대항이라도 할 상 싶은데 전혀 대항하는 기색이 없이 무조건 나 죽여주십시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애걸복걸 비명 지르기에 급급합니다.

수놈이 열 마리가 되니 먼저 보는 놈이 왕이라고 닥치는 대로 물리니 아무리 짐승이지만 그대로 방치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귀도 찢어지고 다리며 목이며 사방에 잇발 자국이 나서 보기에도 흉하고 제명에 못 죽을 것 같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자대에서 처분하고 말았습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이놈이 암놈이었어도 수놈들이 박대하였을 것인지 그리고 거세하지 않은 수놈일 경우

서열결정전을 치룬 후 동료로 인정을 받았을 것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돼지왕국이 탄생한지 어언 반년이 넘어서는 어느 날 !

돈사에서 괴성이 울려 퍼집니다.

돼지가 담을 넘다 낙성이라도 했나?

소리가 얼마나 큰지 200미터 떨어진 사무실에서도 쩌렁쩌렁 들려 업무를 중지하고 웬일인가 싶어

돈사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괴성의 장본인은 왕 돼지이고 세 번째 침실에 같이 동거하던 수놈과 암놈이 신방을 차리는 중인데 그곳까지 넘어 갈 수 없는 왕 돼지가 이를 넘겨다보고 소리소리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제 상상으로는 왕 돼지 입장에서 “내가 왕인데 너희들이 붙어 !!!!! 둘째 너 죽었어……. 그만두고 빨리 내려오지 못해 ”하며 고함고함 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상당히 지난 듯 제가 돈사에 가서 이를 확인하고 오래지 않아 이들의 교잡은 끝났습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저는 왕 돼지의 지위를 인정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여 세 번째 울의 문을 열어 방금 일을 마친 암놈을 내 놓고 왕 돼지도 내 놓았습니다.

왕을 두고 딴 놈을 붙어먹었다고 능지처참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왕은 암놈에게 달려가 얼굴로 암놈의 얼굴을 한번 후려치더니 이어 뒤로 돌아 암놈의 등 뒤로 올라타고

교접을 시작합니다. 암놈은 아무 저항 없이 잘 받아줍니다. “아무리 네가 왕이라도 내 낭군은 따로 있어“하고 거절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암놈은 아무런 저항 없이 달라는 대로 그냥 대주는 것이었습니다.

개 같은 년이라고 해야 할지, 돼지 같은 년이라고 해야 할지.......

헌데 방금 백년가약을 맺은 세 번째 방 수놈이 밖의 이 정사 장면을 내다보면서 괴성을 질러 댑니다.

힘이 들어서라기보다 독이 오를 때로 오른 시뻘건 눈동자를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야 이 쌍××새끼야 ! 네가 왕이면 왕이었지 벌건 대 낮에 남의 마누라를 겁탈해 !!!!!!

너 죽여 버릴 거야……. 빨리 그만두고 내려오지 못해! “ 라고 하는 듯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들의 교잡도 끝나면서 마누라 빼앗긴 수놈의 괴성도 끝났습니다.

 

하여 이번에는 전남편 수놈을 울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역시 독이 오를 때로 오른 전남편이 공격을 시작합니다.

오늘이 있기 전에는 결코 서열 둘째가 왕에게 공격의사를 표하지 못했었습니다.

왕이 머리로 한번 받으면 “ 예 ! 성님! “하고 피해 갔습니다.

헌데 오늘은 처음 서열 전을 치를 때처럼 결투를 신청합니다.

“너 내 마누라 겁탈했어! 왕이라도 결코 용서 못해 죽여 버릴 거야!!!!! “

“무슨 소리야 내가 왕인데 내 왕국의 모든 여자는 다 내꺼야! 이게 죽을라고. 환장했나. 어디 임금이 점찍은 여자를 감히 먼저 건들려……. 그래 어서 덤벼라 너 같은 놈은 죽여 본때를 보여 줄 것이다.”

이리 서로 질타를 하며 결투전은 시작되었고 머리고 귀고 목이고 다리고 서로 물고 밀고 당기며 싸우기를 20여분 ! 나의 예측대로 왕이라도 방금 정사를 치른 뒤라 기운이 다한 상태이고 옛날에 이겼었으니 당연히 이긴다는 자만심이 있는 반면 둘째는 잠시나마 휴식시간도 있었고 마누라를 겁탈했다는 복수심이 불타는 지라 죽기 살기로 달려들면서 끝내 둘째가 이기더군요.

역시 돼지들은 신사야!

사람 같으면 죽음으로 끝날 전투가 돼지들은 한쪽에서 항복하니 더 이상 전투를 하지 않습니다.

도망간 왕은 승자의 눈치를 봐가며 주변을 맴돌고 더더욱 놀라운 것은 챔피언 전에서 이긴 둘째가 유유히 왕방으로 들어갑니다. 어찌 이런 일이 .......

아 !!!!! 역시 서쪽 방이 돼지왕국의 황실이었구나!!!!!

사자왕국의 왕위 쟁탈전을 방불케 합니다.

암놈과 한방을 쓰는 재미보다 왕으로서의 품위를 먼저 챙기는 돼지들을 보며 계급사회의 한 일원으로 근무하는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그 후 오래지 않아 돼지 왕국은 끝났다. 임신한 새댁 돼지는 분만도 못하고 사단 체육대회 시 상금으로 ,증식용으로 모두 분배된 후 텅 빈 우리를 둘아 보는 나의 마음은 그저 아린 듯 숙연해 질뿐이다.

 

1973.10월 가을 어느 날 양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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