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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및 기행문

龍 騰 萬 里 雲

龍 騰 萬 里 雲

어디라고 정확히는 꼬집을 수는 없으나 산세로 봐서 설악산 중턱 깊은 계곡 같았다.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계곡 물이 불기 시작했으며 나는 하산로가 차단되기 전에 계곡 물을 건너려고 물에 들어섰다.
그런데 막상 물에 들어서고 보니 물은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이 불어나서 발이 땅에 닿지가 않았으며 나의 몸은 물살을 따라 그냥 떠나려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건너고자 하는 방향으로 헤엄을 처 보았으나 뜻처럼 되지가 않았고 얼마를 떠나려 가다가 큰 바위에 걸린들 하여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좌우로 돌아보니 나의 몸은 펑퍼짐하게 깔려있는 암반 위에 누워 있었고 바로 앞에는 바위 절벽이 깎아지른 듯 까마득하고 그 위에 동굴이 있다고 말들을 하며 그 굴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암반은 부산의 태종대 바위처럼 생겼으나 태종대에는 동굴이 없으며 동굴만을 본다면 꼭 제주도의 산방굴사 앞 같기도 했다.
자나는 사람들을 보고 " 나를 돈 사람이라고 욕하지 마소. 나도 지금 이럴 수가 있나 궁금하고 이상하고 어이가 없어 내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구려......괴이하고 신기하기도 한 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소" 하면서 방금 전에 발생했던 사실을 이야기 해 주었다.
" 어제는 분명 내가 설악산에 있었는데 갑자기 내린 폭우를 만나 급류에 떠나려 왔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 제주도에 와서 앉아 있게 되었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가 않네요" 하니까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말도 안 된다는 인상들이었다.

또한 내 앞에 한 후배장교가 군의 특기병을 양성하는 기술병과 학교에서 현재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인데 학교의 교육 및 고시분위기가 완전히 흐트러졌다고 하면서 내가 그곳에 있을 때가 좋았다고 했으며 내가 그곳에 가서 다시 기강을 바로 잡아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학교가 지금은 부산에 안 있고 김해로 옮겼으니 김해로 가자고 했으나 나는 "그냥 이곳에 머물겠다" "이제 학교의 기강 확립은 나의 일이 아니다." 라고 그의 제의를 거절하였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세상사를 생각하지 않고 나를 찾는 사람들이나 선도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눈을 감으니 김해에 있다는 학교의 무질서한 학습 분위기가 눈에 비쳐왔으며 오라고 손짓해 왔으나 가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다가 잠을 깨고 보니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꿈속의 장면들을 정리하면서 잠시 누워있었는데 나의 마음이 아주 평온함을 느꼈다. 이렇게 평온스럽기는 난생 처음이 아닌가 싶다.

수면이 부족하지도 않고 그야말로 깊은 산 속 명당에 자리한 사찰에서 대자연의 향연을 음미하면서 세상을 잊고 인간이란 자체도 잊고 우주만상의 한 객체로서 태양을 신록을 바라보며 무념무상의 상태에 젖어있는 나를 연상하게 했으며 그러고 보니 내가 기병교에 근무 할 당시(84년 가을) 양산 통도사에 계신 성파 스님을 찾아 뵈 온 적이 있었는데 이때 나에게 써준 휘호에 " 용등 만리운(龍騰萬里雲) " 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이 만리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른다는 뜻, 이는 지구상에서 출세한다 기보다는 어지러운 세상 삶에서 탈피한다는 , 벗어난다는 그런 의미일 것 같고 만인중의 한사람으로 , 만별 중에 한 별로 부상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렇게 남달리 부상하고 싶은 마음을 추호도 생각한 바가 없었기에 '"사나이 가야 할 길을 소신껏 찾아가야 한다"는 뜻 같기도 하고 나아가 " 나의 소망이 분명 실현 될 것이다."란 예언 같기도 하여 가슴이 설래이기도 한다.

생각해 보건대 나의 길은 자연 속에서 사람을 선도하며 사는 것이 제일 옳고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사람이 오고 안 오고는 별개의 문제이다.
우선 내가 그렇게 지내고 싶고 내가 필요해서 찾아오고 내 말을 듣고 따르는 사람을 선도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곳이 어디이고 그 시기는 언제쯤인가? 생각해보니 그것도 언제인가 꿈에서 보였던 것 것 같다.

절 입구는 대수롭지 않게 생겼는데 그 옆을 지나 굴속으로 들어가 보니 입으로는 표현 할 수 없는 규모의 웅장하고 화려하고 고색 찬란한 법당과 기물이 즐비하여 이런 대 사찰이 어떻게 동굴 속에 지어 질 수 있는가! 지금도 우리 나라에 존재하고 있단 말인가! 헌데 왜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하며 탄복해 마지않든 절이 생각났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지금까지 방문해 보았던 모든 사찰들을 회상에 보지만 비슷한 곳도 없다.

주변 모습으로 봐서는 수암보 온천 부근의 미륵사지 같기도 하고 전라북도 부안의 내소사 같기도 하고 울산의 석류굴 같기도 하지만 같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어쩌면 제주도의 산방굴사 같기도 하지만 그곳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부적합하다.
조용하고 외지고 명당자리는 부안의 내소사 같기도 하다.
부안의 내소사는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사찰의 위치는 주변의 산세와 숲과 전망 등으로 볼 때 대가람으로 유지 계승될 만 한데 불자가 없어 그런지 아니면 조계종에서 따돌림을 받아 그런지 사찰관리가 소홀하여 거의 방치된 듯 한 모습이다.
그곳에 가서 사찰을 융성하게 이룩한다면 그렇게 하여 진정한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내가 먼저 깨달은 후 중생들을 선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용등만리운"이 아니겠는가!
시기가 언제인가?
시기도 때가 분명 올 것이다.
그때가 지금이 될지, 아니면 내년, 후년이 될지 모르지만 이것이 분명 나의 길이라면 시기 또한 적절한 때에 분명 나타날 것이다.

내가 세상을 정리 할 수 있는 조건은 이미 구비되어있다.
세상사의 매력이 어떻다는 것은 느껴 볼만큼 느껴 본 나이이다.
달고 쓴맛 모두를 맛보았고 이제 더 이상 단맛을 쫓아 불나비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 한 바도 있다.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전도하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 생활의 고통에서도 벗어났다.
군인 연금이면 나의 식생활에 대해서는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읽었던 법어가 생각난다.

"네 먹을 식량은 저 바위굴속에 있으니 오직 수도에만 정진하라"는 산신의 게시에 따라 굴속을 들어가 보니 한 그릇의 밥이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밥을 먹고 수도를 시작하였다.
이상한 것은 수도를 하다가 끼니때만 되면 그곳에 밥 한 그릇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리하여 그는 수도에만 정진 할 수 있었다 했는데 현대식으로는 적어도 최소한의 식생활비가 있어야 생명을 연명하면서 수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헌데 나는 작년부터 군대생활 20년이 넘어 연금 수급자가 되면서 앞으로 전역을 하면 평생 생활비가 나올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그 수도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찰을 융성하게 일으키는 것은 천문학적 돈이 요구된다.
한 두 사람의 , 한 두 해의 시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돈이다. 아니 평생을 모아도 불가능 한 돈이다.
하지만 내가 진리를 터득하여 수 사람들을 교화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준비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부터라도 세상을 순리대로 살고 너무 세상사에 연연하지 말자.
우선 내 마음부터 평온하게 갖도록 하자!
시기가 오면 그때 결행하기로 하자.
위치도 그때 전국을 다시 돌며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지금부터 옆방의 세입자를 내보내고 옆방에 부처님을 모셔 놓고 내가 수도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같이 예불하는 곳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좀더 두고 결행하여야 할 것이다.

1988년 6월 8일 06시 45분

부석사: 전망은 좋으나 포근한 감이 없고 숲과 물이 부족함.
보경사: 숲은 좋으나 물이 부족하고 포근하나 전망이 없다.
구룡사: 숲과 물은 좋으나 전망이 없고 포근한 맛이 없다.
청송 주왕산: 아늑한 감이 없고 관광객이 많다.
오대산 적멸보궁: 전망은 좋으나 포근함과 물이 없고 관광객이 많다.

88년 10월 26일 새벽.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으나 작골(강원도 안성군 호저면 주산리)인 것 같았다.
현재의 마을과 가옥들은 자세히 나타나지 않았고 다만 산새로 봐서 그렇고 지금의 연못자리에 지금보다 훨씬 더 현대적 설계에 의한 계단식 대형 양어장이 있었다.
도랑 가에서 고기를 잡고 놀던 나는 펄펄뛰는 금붕어를 한 마리를 잡게 되었다.
잡은 순간 양손아귀에서 퍼덕이던 그 촉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남아있는 듯 하고 현실이 아니기에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다.
이렇게 잡은 금붕어를 들고 얼마쯤 걷고 있노라니 까 금붕어가 입을 뻐끔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 이렇게 들고 가다가는 금붕어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옆을 보니 계단식으로 된 아주 오래된 듯한 주인이 방치하는 듯 한 수심이 무릎 이하 인 듯 한 그리고 무척이나 연꽃잎이 많이 덮여 있는 연못이 보였다.
그래서 금붕어가 숨을 쉬게 할 양으로 오른손으로 꼭 쥐고 물 속에 담구어 숨을 쉬게 했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다. 연못 밖에서 연못 안으로 들어와 한참을 추적 연못 밑에 숨는 것을 다시 잡아 연못 밖에 임시 웅덩이 (잡은 고기 임시 보관소)에 던져 넣었다.
그 웅덩이는 모래웅덩이며 또 내가 파 놓은 웅덩이는 아니고 사방이 잔디로 깔려있는데 한곳에 약간의 물이 고여있는 형태의 웅덩이로 금붕어가 누워야만 물에 잠길 수 있을 정도이다.
그곳에서 금붕어는 펄떡 펄떡 뛰었고 밖으로 나오면서 커다란 연잎을 옆으로 밀어 보았더니 그 밑에는 내가 좀 전에 잡았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금빛 비단 잉어 두 마리가 있었다.
이 두 마리를 양손으로 잡은 순간 이것들은 왜이리 힘이 없을 까? 양어장에서 못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물이 빠져 그런가? 하였든 먼저 것 보다 별로 퍼덕이는 맛이 없었다.
역시 두 마리도 연못 밖 엉덩이에 던져 넣었는데 갑자기 시꺼멓게 생긴 개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내가 잡은 금붕어와 비단 잉어를 물어갈 양으로 고기에게 덮쳐 들었다.
하여 고기를 지킬 양으로 시꺼먼 개에게 달려가 발길질을 하였더니 그 개는 그대로 다른 곳으로 피해 다라 났다.
깨어 보니 꿈이었고 양손에 퍼덕이던 금붕어의 촉감은 그대로 남아있는 듯 하다.
관세음 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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