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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및 기행문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 천왕봉

10분전 네 시까지 서울 천호동의 통일 산악회 출발장소에 도착하려면 집(용인시 수지읍)에서는 적어도 세시에는 출발해야 약간의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상시간은 두 시 반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제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날 시간이 부담이 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일의 여행에 마음이 들떠서 그런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집사람이 정확히 기상하여 등산준비를 맞혀 놓고 나를 깨울 것이 확실하지만 혹시나 같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어서 그런지 좀처럼 잠이 들지 않고 눈만 감고있다가 집사람이 일어나라하여 일어나 보니 세시다. 아! 내가 실수를 했구나! 두 시 반에 깨워 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집사람이 알아서 깨워 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배낭을 메고 아파트 문을 나서니 3시 20분이다. 늦지 않을까? 야간이라 직선도로에서의 정지 신호는 무시하고 약간 과속을 하였다. 판교 IC에서 구리간 고속도로에서는 150도 밟았다. 덕분에 10분전에 출발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에 도착 한 것이다. 미리 출발지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순기씨 내외가 나를 발견하고 반가이 맞아 준다. 혹시나 늦지 않을까 염려를 했을 것이다. 그들 내외와 우리내외 사이는 10년 지기이지만 같 이 산에 가는 것은 처음이고 그들이 우리 내외를 통일 산악회에 초청하였고 또한 신청을 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늦어 출발에 지장을 주게되어도 그들 내외가 죄스럽게 되고 너무늦 어 아에 못 가게 된다면 그들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 하니 자연 일분 간격으로 시계를 보며 기다렸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뛰어와 배낭을 받아주고 주차장으로 안내하여 출입문 까지 열어주고 이런 모든 것이 나 역시도 반갑고 고마울 뿐이다. 무조건 버스에 올라탔더니 이미 자리까지 잡아놓고 있었다. 예상보다 사람이 많이 온 모양 이다. 좌석이 없다고 . 일행이 한사람 안 왔다고 세 사람이 하차를 하였다. 우리 내외 때문 이 아닌가 싶기도 하였지만 원래 처음 온 사람은 가라는 소리를 안 하는 법인데.. 주최측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약속한 시간에 버스는 출발하였다. 한사람이 고덕에서 탄다고 버스는 고덕으로 돌았고 현장에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까 버스는 그냥 지나처서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잠이 부족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였는데 불편한 좌석인데도 비몽사몽간에 얼마간은 잠이 들었었다. 차가 고속 도로를 벗어나는가 싶어 눈을 떠보니 옥천 IC를 돌아 나가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방향을 잘 못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수가 오늘의 산행장소를 속리산으로 잘 못 안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 리는 없을 것이고 분명코 무주를 경유해서 거창, 함양, 산청으로 가는 모양인데 덕유산을 넘 는데 시간이 많이 소모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의 생각으로는 전주에서 남원 으로 와서 산청으로 가던지 아니면 김천에서 거창으로 하여 함안 , 산청으로 가야되것 같아 염려를 하였더니 조순기 씨가 "기사가 어련히 알아서 가지 않겠느냐"고 염려하지 말라 했다. 내가 주최측이 아닌 이상 나는 그들의 계획에 그냥 따라 붙으면 그뿐이다. 함양에서도 산청까지 고속도로가 새로히 건설되어 운행되고 있어 국도보다는 시간을 단축 할 수 있었는데 진입로를 찾지 못 해 그냥 국도로 산청까지 왔다. 코스를 잘못 잡았는지 아니면 운전수가 운전을 잘 못 하였는지 산행 출발점에 버스는 10시 30분에 도착하였고 주최측의 말로는 한시간 정도 지체되었다고 하였다. 버스가 도착하여 하차하자 말자 일행들은 경쟁이라도 하는 듯 그대로 출발하였다. 출발하기 전 인원을 집결시켜 놓고 등산을 할 사람과 못할 사람을 구분한 후 산행 코스와 요령 그리고 중식장소 및 시간 등 필요사항을 설명해 주어야하는데 그런 요식이 없이 곧 바 로 출발시켰다. 이들은 벌써 여러번 산행을 하였기 때문에 숙달되었는지는 몰라도 무엇인 가 기본이 엉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이 교육을 받으로 가 참석치 못하였고 그 부인이 강 부장이란 호칭으로 불리면서 행사를 주관하고 있었는데 회장이 없어도 계획대로 산행을 할 것이니 협조를 잘 해달라고 차내에서 방송이 있었고 , 산행을 못 할 사람도 파악하기는 한바가 있었다. 휴식시간 통제도 인원파악도 없이 각 개인의 능력대로 등산을 하였고 선두 가 너무 빠른지 , 후미는 얼마나 처저 있는지 중간에 위치한 나로서는 알 길이 없어 집사람 과 조순기씨 내외만을 신경 쓰면서 올라갔다. 다행히 갈림길이 없고 천왕봉에 이르는 등산 로 안내 간판이 요소 요소에서 안내를 잘 하여준 덕택으로 딴 길로 빠진 사람은 없었다.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매표소를 출발하여 두 시간 정도 올라가니 법계사가 있었다. 등산로 와 연결이 되어있지 않아 그냥 지나 쳤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 아 닐까 싶다. 13년 전인 1985년도에 부산에 살면서 이곳 천왕봉에 등산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 계곡에서 출발하여 천왕봉을 경유 중산리로 하산하였기 에 등산로가 그리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올라가다 보니 오르락 내리락도 없이 계속하여 오르막길이며 경사도 까팔라 돌계단 아니면 통나무 계단 이여서 등산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암자나 절에는 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도로가 뚫펴 있는데 이곳은 해발 고도도 높지만(1300M) 차가 올라 올 수가 없어 법당에 예불하러 오는 불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등산과 예불을 겸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등산하다가 법당 이 있으면 예불하는 경우는 있어도 예불하려 왔다가 등산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이 절에 예불하려 오는 불자는 그 만큼 고행을 해야 될 것 같다. 등산객 입장금지 간판이 있기는 하지만 구경 삼아서 또는 식수를 얻어 마실 요량으로 절에 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높은 위치로 봐서는 그리 조용치는 못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온몸에 흐르는 땀을 식히며 가쁜 숨을 토해낼 지라도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가을 단풍의 향 기가 너무도 상큼하여 IMF로 새까맣게 끄을린 심장이 하아얗게 세탁된 것 같다. 중산리가 눈아래 아련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라 드높은 하늘 아래 암홍색 선홍색 노랑색 흑녹색, 적갈색. 연갈색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색상의 그림은 오직 신만이 그릴 수 있는 살아 숨쉬는 그림이 아니겠는가? 정상이 눈앞에 있다. 이제 300미터밖에 안 남았다는데 300미터가 왜 저리도 멀더냐? 저리도 높더냐? 두 번을 쉬었는데 이번에는 30분만에 다시 앉아 아픈 다리를 쉬어야 했다. 너무나도 경사가 급하고 무릅이 지쳐있어 정상까지 강행하기는 무리일 듯 싶어 쉬기로 마음 먹고 평편한 자리를 잡아 앉으니 뒤따르던 일행도 따라 앉았다. 물을 마시고 오이를 하나 꺼내 먹을까 생각하니 옆의 일행이 신경 쓰였다. 아직도 갈 길은 먼데 두 개를 모두 꺼내 나눠 먹기도 그렇고 하나만 꺼내 나눠 먹자니 내 속에 들어갈 것이 없겠고 해서 옆에 나 만한 바위가 있기에 자리를 옮겨 돌아앉아 오이를 꺼내 혼자 베어먹기 시작하였다. 일행이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잘 못하는 것 같다. 인사를 나눈 사이는 아니라고 해도 같은 차를 타고 온 일행이고 차에서 총무가 소개까지 했 는데 같은 산악회 회원으로서 먹어 보라는 인사도 없이 돼지같이 혼자만 먹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이를 씹어 먹어도 죄스러워 제 맛이 나지 않는 듯 했다. 1850M지점에 천왕샘이 있는데 일행의 말만 듣고 그냥 지나 쳤는데 나중에 들으니 집사람은 그곳에서 똑똑 떨어지는 샘물은 받아 마셨다고 했다. 오늘도 집사람의 등산 속도가 나 보다 빨랐다. 지난주에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할 때는 내가 아침식사를 제대로 들지 않아 속이 허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오늘은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였고 모든 상황이 집사람 보다 떨어 질 이유가 없는데도 집사람을 따라 갈 수가 없었다. 굳이 따라갈 생각을 하지 않고 각자 자기 속도대로 등산한 것이지만 그래도 옛날에는 집사람이 자주 쉬거나 속도가 느리기 때문 에 내가 앞서 가다가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쉬었는데 오늘은 그 반대였던 것이다. 나는 정상적으로 50분 행군에 10분 휴식시간을 준수 해 가면서 산행을 하는데 집사람은 오래 쉬면 다리가 풀려 오히려 걷기가 더 힘들어 진다고 잠깐 그저 5분 정도 쉬고는 산행을 계속하다 보니 나 보다 먼저 정상에 올라갔다. 일행 45명중 다섯 번째이고 여자들 중에서는 두 번째 이였다고 은근히 자랑까지 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기력이 저하된 것 이 아닌가 싶다. 전에도 등산을 같이 하다 보면 속도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내가 빨랐는데 오늘은 속도 면에서도 집사람이 빠른 것 같다. 집사람이 산행이 숙달 되어 그렇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내가 기력이 저하되어 그렇다면 이는 문제가 된다. 12시 30분에 정상에 도착하였다. 출발해서 세 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 한 것이다. 등산 지도에는 4시간 10분 코스인데 3시간 걸렸으니 한시간 10분이나 빨리 등산 한 것이다. 맨 나중에 도착한 사람은 나보다 30여분 늦게 도착하였다. 선두는 나보다 10분 정도 빨랐으니 결국 선두와 후미는 40여분 정도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후미도 40분 빠른 수준이다. 역시 아마추어로서는 상급 수준 인 셈이다. 천왕봉(1,915.8M)은 지리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 지리산을 대표하고 남한에서는 제주의 한라산(1,950M)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천왕봉에 올라서면 만산이 눈 아래 찰 것으로 생각했 는데 착시 현상인지는 몰라도 동서남북 시야에 들어오는 산들 중에서 천왕봉보다 더 높아 보이는 산들이 여러 개나 보였다. 일행 중에 물어 보아도 확실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 다. 내 짐작으로는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닷가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나의 시야 보다 높게 보이는데 실제로는 내 눈이 3,4M 높은데도 수평선이 높게 보이는 원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정상을 정복하였다는 승리감도 있을 것이고 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천왕봉 표지석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기념 촬영을 하는 등산객들을 보면 이해는 가지만 진정한 산행의 의미가 퇴색해지는 듯 하여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더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과자를 까먹은 듯 빈 봉지들과 담배꽁초가 버려진지 오래지 않은 상태인데 우리일행중 한사람이 발견하고 주워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저 사람이 진정한 산악인이구나! 전에 다른 산악회에서는 정상에 도착하면 북쪽을 바라보고 서서 산을 좋아해 산에서 사고로 죽게된 영령을 위한 묵념과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해달라는 기원 그리고 야호 삼창 순 으로 간단한 예식을 가젔었는데 이 통일 산악회에서는 그런 행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시간차가 너무 많이 나서 하려면 먼저 온 사람들의 기다림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행사가 꼭 필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산행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보다 건실하게 하지 않을 까 싶다. 친한 사람끼리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준비해온 반찬이며 밥까 지도 나눠 먹기도 하고 어떤 이는 과일 주를 가지고 와 조금씩 나눠 마시기도 했다. 화기애 애하다 고나 할까. 갈 길이 먼데도 식사시간은 충분히 부여해 주었다. 식사를 마치니 두 시 반 일몰시간까지 세시간 반밖에 안 남았는데 다섯 시간 반이나 걸리는 코스를 어떻게 나려 갈 것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일행 중에서 칠성 계곡 쪽은 길도 함하고 여름 장마 때 유실 된 부분도 있고 하니 백문동 계곡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주최측에서는 당초 계획대로 밀어 부친다고 했다. 식사시간이 다 끝났다는 하산을 시작한다는 그 어떤 신호도 없이 먼저식사를 마친 사람 순 으로 일어나 하산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조순기씨 와 보조를 맞추어 짐을 챙긴 후 하산하다 보니 남보다는 다소 늦게 출발한 셈이다. 하산 길은 예상한대로 험했다. 아니 길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등산객이 거의 안 다니는 코스이매 틀림이 없는 코스이다. 해서 그런지 하산 입구에 등산로를 폐쇄했다는 ,출입을 금하는 경고판이 붙어있었다. 지난여름 태풍 때 야영금지지역에서 야영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은 야영객 가족들이 공원관리공단 측에 왜 강력하게 입산을 통제하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자기네 자식이 죽었다고 한탄하던 뉴스를 본 적이 있었는데 기성세대인 우리도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만일 하산 중 실수로 불상사가 난 다면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한 발 한발 나려 가는데 신경과 힘을 쓰다보니 하산 길에도 땀 이 난다 . 지금까지 하산하면서 땀을 흘려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 지리산은 지리산인가 보다. 처음 30여분은 그래도 능선으로 하산하는가 싶었는데 오래지 안아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말이 계곡이지 이건 칼날 같은 급경사의 깊은 계곡이라 급경사에 매달리듯 로프에 의지하여 게걸음을 걷던가 아니면 바위나 쓰러저 있는 통나무를 안고 넘는 등 이건 정말로 군의 특수 훈련코스와 같았다. 문제는 길보다 밤이다. 다섯 시간 반이나 소요되는 산행 길을 남보다 조 금 빠르다고 해도 네 시간 반 또는 다섯 시간은 소요될 것이니 적어도 오후 일곱 시나 일곱 시 반은 되어야 등산이 끝날 테인데 그때가 되면 어두워서 제대로 하산을 할 수 없을 것이 다. 밝을 때 10분 걷는 길을 야간에는 한시간이 걸릴지 두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아니 길을 잃어 아에 하산을 못할 수도 있고 험한 길에 실족하여 불상사가 날 수도 있으며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구조할 방법도 없는데.... 겁이 난다. 불안하다. 그냥 하산하기도 힘든데 마 음까지 불안하니 더더욱 땀이 나고 힘이 빠지는 듯 하다. 이런 상황까지 가지 않으려면 최 소한 밝을 때 험한 길을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려가야 한다. 해서 우리들은 단 5분도 쉬 지를 못하고 계속 하산을 하였다. 같이 간 일행도 우리와 같은 생각인지 아니면 우리보다 속도가 빠른 것인지 아무리 쉬지 않고 따라 붙어도 일행들이 보이지 않았다. 집사람이 염려 되었으나 다행 이도 나의 도움 없이 어려운 길을 잘 나려 가주고 있었다. 오른 쪽 벼랑을 타고 나려가다가 길이 끊어지고 나면 계곡으로 나려가 급류가 흐르는 계곡 물을 점검다리 건너 듯 점프로 뛰어 건너 반대편 벼랑에 길 표시가 어데 붙어 있는지를 찾아 왼쪽 벼랑으 로 붙어 급경사를 오르내리며 부지런히 걸었다. 다리도 몸도 마음도 지첬 지 만 쉴 수가 없 다. 앞서간 일행 중에 있을법한 낙오자가 한 사람도 없다 . 정신을 제대로 차린 사람이라면 결코 1분이라도 지체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죽기 살기로 나려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 도 우리와 똑 같이 생각 할 것이다. 생각이 이러하니 계곡의 경치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 다. 울굿불굿 물든 단풍과 맑은 물 ! 하얗게 부서지는 폭포 ! 굽이굽이 형형색색으로 설치되 어있는 선녀 탕! 손 한번 못 넣어 보고 오직 걷기에만 급급했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하 산하면 정말 풍취를 만끽할 수 있는 등산 코스다. 길이 험하니 접근하는 사람이 적어 더욱 자연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음이 장점이기도 하다. 넘어가는 석양노을이 우리걸음보다 더 빠 르게 하산하고 있었다. 계곡이 깊어 그냥도 어두운데 노을이 지나니 급히 어두워진다. "야 호!" 소리를 질러 보아도 앞 뒤 어느 곳에서도 응답이 없다. 우리가 낙오를 한 것인지 아니 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으나 계곡 자체가 하나이니 딴 곳으로 빠질 수 가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르면서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해가 짧아 여섯 시면 어두워 길이 안 보일 것인데 그때까지 큰길에 도착할 수 있으면 좋으 련만 어떤 산 어느 계곡이라도 산 중턱 까지 산판 길이나 농로인 경운기 도로 정도는 나있 을 것이다. 헌데 이 계곡은 어디서 끝나는지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여섯 시다.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길이 계곡에서 3부 능선 4부 능선 위로 올라가는 것 이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렀고 다행스럽게 땅이 밟혔다. 자주 작은 바위를 만나긴 해도 땅을 밟으니 이제는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사람의 형체가 희미하다. 이제는 일행도 처다 볼 여유가 없다. 돌 뿌리나 나무 뚜거지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땅바닥만 주시하면서 걸어야 한다. 계곡을 건너는 쇠 로프 다리가 나왔다. 아 ! 다 나려 온 모양이다. 이제 마을이 멀지 않을 것이다. 여섯 시가 조금 넘어서 산간 마을에 도착하였다. 네 집이 여기 저기 흩어저 살고 있다. 어두워 정확히 보이지를 않아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 수가 없다. 마을로 접어들었지만 길은 그대로 외길이다. 경운기는 사용을 안 하거나 못 하는가 보다. 하늘에 상현달이 밝게 떠 있어 길이 좁고 자주 잔 바위가 나타나도 분간이 된다. 다리는 아파도 이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밑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주차장이 멀지 않은가 보다. 1967년 1월 30일 . 31년 전 이곳 지리산에서 나는 유격 훈련을 받은바 있다. 음력 정월 열 나흩날 밤이었다. 적지에서 포위되었다가 탈출하는 상황의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나무 그 루터기에 걸려 앞으로 넘어지면서 작은 나무 그루터기에 바로 오른쪽 눈 밑을 찔렸다. 방한 수갑을 벗고 손바닥으로 훌터 보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엎어진 자리에 다시 무릅을 꿇고 앉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 하나님 고맙습니다. 눈을 보호 해 주셔서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 그때 내가 눈을 다쳤다면 분명 육군소위로 임관을 못 하였을 것이고 그로 해서 나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그후로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불행 중 다행스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지금은 불교신자이지만 당시는 종교를 가지지 않았는데도 가끔 씩 하늘을 처다 보며 인생을 반성하고 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아무튼 이런 추억으로 해서 야간 산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태생이 시골 촌놈이고 학창 시절 6년간이나 겨울철이면 밤길을 걸어서 통학하였기 때문에 밤길을 걷는 그 자체는 싫어 하지 않는다. 아니 일종의 향수를 가지고 있다. 위험한 산행을 한다는 것이 사나이로서는 그 어떤 긍지를 심어주는 계기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 후래쉬 불빛이 나타났다. 먼저 나려갔던 총무가 후래쉬를 들고 올라 왔다. 후미에 오는 사람들의 길을 비춰주기 위해서 지친 몸을 아랑곳 하지않고 또 책임도 있어 다시 올라오는 모양이다. 우리 뒤에 처진 사람들 7,8명은 많이 떨어진 것 같다고. 나이가 많은 회원들이고 걷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어서 올라 가 보라고 격려를 하고 주차장의 불빛을 바라보며 마지막 발길을 재촉한다. 우리는 일곱 시 좀 못되어 도착했고 마지막 팀은 19시 반경에 도착하였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다 . 모두가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집결지에 도착한 것이다. 아 ! 정말로 다행이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낙오자 때문에 길에 서 밤새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었는데 모두가 그 험한 산길을 무사히 나려왔으니 얼 마나 고마운가?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지리산! 정말로 진저리 난다! 이쪽으로 대고 오줌 누나바라. 모두가 얼마나 지쳤는지 상경길이 조용하다 . 가끔씩 "아이구 다리야 !" 하는 소리 외엔...........
1998년 10월 29일 목요일 칠성계곡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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