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작시

아파트 계단




아파트 계단


84년 8월 15일





스무 살 아내가

통로에 걸려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양

우유 빛 등불을 막고 서서

“다녀오세요” 선창을 하면

가방 챙기는 첫째, 밥 먹던 둘 째

합창을 한다.


잠들었던 통로가

기지개를 치듯, 전율하듯,

계단 계단마다에서

메아리 친다.

포근한 밍크 속에 비수가 숨겨진 듯

흡혈귀가 화장하고 누워 기회를 노리듯


지난날

사랑의 정표요,

기원이던 저 소리의 의미는

이제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는 채찍이던가

원망과 저주를 토로하는 잠꼬대인가


다시는 열려 질 수 없을 듯

출입문은 굳게 굳게 닫겨 지고

통로에는 다시 적막이 흐른다.

돈벌이고 ,여행이고, 막연하다 해도

피안이든 지옥이든 떠나야 한다.


아직도 바람이 싱그럽고

귀가 쟁쟁하며

비록 눈이 침침하나

사지가 멀쩡하니

내려가는 것으로 족 하자!


끝을 보기 위해 일단 내려왔으나

본 것도 들은 것도 없이

머무를 수 없어 다시 올라갑니다.

인생의 의미만큼이나 어려운

꼬마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보며

지난날 활기찬 노래를 중얼거리며

주저앉을 것 같은 걸음으로

계단이 있기에 올라갑니다.


죄송합니다.

아담과 이브 때문입니다.

통로에 걸려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아내가

안으로 용접한 출입문을 열고 나와

[ 또 마셨꾼!]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로등 아래서   (0) 2011.12.14
나는 감사한다.  (0) 2011.12.12
동상의 유언  (0) 2011.12.12
사막   (0) 2011.12.12
디스코  (0) 2011.12.10